이데미쓰(5019 JP)마루 호르무즈 해협 통과…이란과의 신뢰가 배경

일본 / 우소연 특파원 / 2026-05-04 10:12:17
(사진=이데미쓰마루)


[알파경제=(고베)우소연 특파원] 니혼게이자이신문(니케이)에 의하면 이데미쓰고산의 대형 석유 탱커 ‘이데미쓰마루’가 봉쇄가 이어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일본 정부도 통과를 지원했지만, 다른 일본 선박까지 같은 길을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데미쓰가 이란과 오랜 기간 쌓아온 다층적 관계가 선박 선택의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데미쓰마루는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를 두고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도 일본 관련 선박의 통과를 요구할 방침이지만, 이번 사례가 모든 일본 선박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데미쓰마루의 이름은 1953년 이란에 석유를 실으러 갔던 데미쓰의 탱커 ‘일장마루’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이란 관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주일 이란 대사관도 이데미쓰마루의 통과에 맞춰 닛쇼마루를 언급한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다만 현재 이란의 젊은 세대 상당수는 70년 이상 전의 사건을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영국의 봉쇄를 피해 이란으로 향했던 히쇼마루의 기억은, 서구와 대립해 온 이란의 시각에서는 의미 있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같은 해 일어난 미·영의 모사덱 총리 전복 쿠데타와 함께, 혁명 이후 이란의 역사에서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이데미쓰는 일장마루 이후에도 이란과의 관계를 이어 왔다.

1991년 걸프전 뒤에는 석유 원매도 과정에서 테헤란 사무소를 가장 먼저 재개했다. 이듬해에는 당시 이데미쓰 쇼스케 사장이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혼란이 남은 이란을 방문했다. 쇼스케 씨는 이데미쓰의 창업자이자 닛쇼마루를 파견한 이데미쓰 사산 씨의 장남이다.

이데미쓰는 2019년 쇼와 셸 석유와 통합했다. 쇼와 셸은 통합 전 이란 국영석유회사(NIOC)와 이란 원유 거래 가격을 선행 협상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결과는 다른 석유 원매도의 기준이 됐다. 이번 통합으로 인맥과 연결망이 더 두꺼워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데미쓰가 촘촘한 관계를 구축한 대상은 이란에만 그치지 않았다. 36년 전인 1990년 8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쿠웨이트에 주재하던 일본인 비즈니스맨과 가족 200명 이상이 이라크로 이송돼 인질이 됐고, 여성과 아이들은 풀려났지만 민간 남성 중에는 이데미쓰 쿠웨이트 주재원이던 타시로 야스히코 씨가 유일하게 남았다.

이냐미쓰가 걸프전 뒤 정리한 소책자 ‘오일맨의 걸프 전쟁’에 따르면, 데미쓰는 주재원 구금을 계기로 이라크 석유부 장관과 국영석유판매회사(SOMO)에 석방을 요청했다. 그는 특정인 한 명이 아니라 모든 일본인의 해방을 요구했다고 전해졌다. 이번 이데미쓰마루 통과를 계기로 타시로 씨는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고 했다.

타시로 씨는 SOMO 총재를 비롯한 이라크 석유 관계자들과 얼굴을 아는 사이였다고 말했다. 이라크를 떠날 때 그는 나만 해방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라고 물었고, SOMO 총재는 SOMO와 이데미쓰의 좋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괜찮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데미쓰는 통과와 관련해 이란 측과 협상했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삼갔다고 니케이는 전했다.

 

알파경제 우소연 특파원(wsy0327@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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