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삼성중공업의 천운, 실력이 운을 앞서야 한다

인사이드 / 이준현 기자 / 2026-04-23 08:27:28
​그리스 재매각으로 실익 챙겼지만…제재 네트워크에 노출된 검증망
‘잔금 미납’이 살린 위기, 소 잃기 전에 외양간 제대로 고쳐야
(사진=삼성중공업)

 

[알파경제 = 이준현 기자] 삼성중공업이 거액의 손실과 국제적 신인도 추락이라는 절벽 끝에서 간신히 발을 뺐다.


최근 이란 제재 네트워크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원유운반선 2척을 그리스 선사인 미네르바에 재매각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결과적으로 2275억 원 규모의 계약 해지에 따른 재무적 타격은 메우게 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선주사의 잔금 미납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뒤 제값을 받고 새 주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미국 재무부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메리트론(Meritron) DMCC’가 바로 삼성중공업의 계약 상대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자칫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라는 거대한 풍랑에 휘말려 국제 금융망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결국 선주의 잔금 미납이라는 우연이 삼성중공업을 살린 ‘천운’이 된 셈이다.

​문제는 삼성중공업의 리스크 검증망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초 계약 상대는 ‘테오도르 시핑’이었으나 도중에 ‘메리트론’으로 명의가 변경됐다. 

 

두 회사 모두 동일한 이란 제재 네트워크에 속한 ‘전면회사(Front Company)’였음에도 국내 대표 조선사의 스크리닝 시스템은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제재 발표 이전이라 몰랐다”는 해명은 글로벌 무대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변명일 뿐이다.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조선 시장에서 미국의 제재는 기업의 생존권과 직결된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중공업은 이중 삼중의 거미줄 검증 체계를 완비해야 한다. 

 

단순히 서류상의 법인 명의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복잡한 지배구조 뒤에 숨은 실질 소유주(UBO)를 끝까지 추적하는 ‘초정밀 실사’ 프로세스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계약 중간에 선주사 명의가 바뀔 경우, 신규 계약에 준하는 리스크 재검증을 강제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와의 공조를 통해 제재 리스트 후보군까지 상시 모니터링하는 선제적 대응 체계도 필수적이다.

​‘운’은 실력이 없을 때나 바라는 요행이다. 이번 ‘메리트론 사태’를 삼성중공업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데 그친다면, 다음번엔 진짜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천운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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