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내부통제_빗썸] ②사외이사 0명 이사회·실소유주 불명…마케팅 대리가 62조 혼자 집행한 이유

흔들리는 내부통제 / 이준현 기자 / 2026-04-09 08:10:19
빗썸홀딩스, 빗썸 지분 73.56% 보유…이정훈 전 의장 측 실질 지배력 54% 추산에도 수년간 실소유주 불명
"수수료 극대화 위해 통제 권한 스스로 낮춘 흔적"…사외이사 0명 이사회, 견제 장치는 처음부터 없었다
침묵이 생존전략이 된 조직…인사권에 묶인 내부통제, 보고 지연·경고 묵살 구조 고착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발생한 62조 원 규모의 오지급 사태와 665만 건에 달하는 특금법 위반 제재는 단순한 전산 오류나 실무자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 자산의 보관부터 거래, 상장 심사까지 독점하는 구조 속에서 내부통제의 붕괴는 예고된 참사였다. <알파경제>는 빗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사고를 통해 내부통제 실패의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제도적 해법을 모색하는 4부작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① 제1회: 사고 연대기 — "62조 오지급부터 영업정지까지, 멈추지 않는 사고의 기록"
② 제2회: 지배구조의 민낯 — "보이지 않는 주인, 통제받지 않는 의사결정 권력"
③ 제3회: 독점적 사업모델의 함정 — "심판이 선수로 뛰는 시장, 설계된 이해상충"
④ 제4회: 제도와 처방 — "빗썸 문제는 현상이 아닌 결과다 — 제도는 무엇을 놓쳤나"

 

10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2023년 1월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 = 이준현 기자] 62만원짜리 이벤트 지급을 62조원으로 둔갑시킨 것은 단 한 명, 마케팅 담당 대리급 직원이었다.

상부 결재도 복수 승인도 없었다. 초유의 대형 금융사고가 아무런 제동 없이 실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사실상 무력화된 내부통제가 있었다.

사외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이사회와 수년간 실소유주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지분 구조는 경영진에 종속된 준법감시 조직이 사고를 가능하게 만든 토양이었다.

◇ 수년간 안 보인 '주인'…다층 지주 구조가 흐린 책임의 선

빗썸의 모회사 빗썸홀딩스는 빗썸 지분 73.56%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그 위층이다. 빗썸홀딩스 지분은 이정훈 전 의장 개인 법인 DAA(34.2%), 코스닥 상장사 비덴트(30%), BTHMB홀딩스(10.7%) 등으로 분산돼 있다.

우호 지분까지 합산하면 이 전 의장 측 실질 지배력은 약 54%로 추산되지만, 버킷스튜디오에서 인바이오젠과 비덴트, 빗썸홀딩스로 이어지는 다층 연결고리 위에서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장기간 불투명했다.

기형적인 구조에 다다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스캔들이었다. 비덴트의 실질 지배자였던 강종현 씨는 여동생 강지연 씨를 앞세워 관계사를 지배하면서 회삿돈 628억원을 횡령하고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비덴트의 빗썸홀딩스 지분을 추징보전을 명령했다. 비덴트의 반환 소송도 패소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전 의장을 동일인으로 확정했지만, 비덴트가 여전히 30%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로 남아 있어 의사결정의 흐름이 외부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구조는 그대로다.

빗썸의 복잡한 소유구조와 지주 체계는 경영 효율을 위한 설계라기보다 리스크 발생 시 책임의 선을 흐리게 만드는 장치에 더 가깝다.
 

24일 경찰이 '김병기 차남 채용 의혹’과 관련 빗썸 본사 등을 압수수색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 사외이사 0명·대표이사 겸 의장…AML 665만건 쌓이는 동안 이사회는 침묵

금융당국 조사 결과 해당 사고는 별도 승인 시스템 없이 단 한 명의 직원이 단독으로 실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당시 빗썸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과 감사 1명으로만 구성됐고 사외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비상장사인 만큼 법적 의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총액 5조2070억원 규모의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기업이 이사회 독립성의 최소 안전장치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구나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구조에서 경영진을 향한 실질적 견제는 애초 작동하기 어렵다.

미신고 해외 사업자와의 거래가 수만건 누적되기 전에 AML 시스템은 강력한 경고음을 냈어야 했고 장부 기반 거래 설계의 결함은 시스템 구축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했다. 그러나 빗썸 방어선은 매번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한치호 경제평론가 겸 행정학 박사는 "사외이사 없는 이사회는 경영진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며 "마케팅 담당 직원이 수십 조 원을 혼자 집행하고 AML 위반 665만건이 쌓이는 동안 이사회가 단 한 번도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은,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8일 서울 강남구 빗썸 라운지. (사진=연합뉴스)


◇ 수수료 극대화에 희생된 통제…침묵이 생존전략인 조직

전통 금융권 은행·증권사에는 금융감독원 상시 감독과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이해상충 방지 장치 등 다층적 외부 감시망이 작동한다.

반면 빗썸은 상장 결정부터 고객 자산 보관과 시장 감시까지 내부에서 처리하는 자기감시 체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가상자산 규제 체계에는 거래소 대주주에 대한 실질적인 적격성 심사 기준조차 없었다.

금융위원회가 대주주 지분 제한 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증권사에 수십 년간 적용된 기준에 비하면 이제야 논의가 시작된 수준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거래량 확대와 수수료 수익 극대화를 위해 통제 권한을 스스로 낮춘 듯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는 점이다.

내부통제 조직이 독립성을 잃으면 보고는 늦어지고 내용은 순화되며 경고는 묵살된다.

사고 전후로 내부 경고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던 이유도,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돌아올 불이익을 우려해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생존전략이 되는 구조적 압박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길우 법무법인LKS 대표변호사는 "외부 견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내부의 교차 확인 기능마저 마비된다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자정 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며 "조직 안에서 침묵이 생존전략이 되는 순간, 내부통제는 이미 기능을 멈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원 빗썸 대표이사가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발생한 거액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 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배구조 자체가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

앞서 짚어본 사고들은 결국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하나의 본질로 수렴한다.

마케팅 대리 한 명이 수십 조 원을 단독 집행하고 665만건의 AML 위반이 방치된 것은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다. 불투명한 소유 구조와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와 인사권에 묶여 침묵을 택한 내부통제 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다.

지배구조는 단순히 지분율을 정리한 도표가 아니다. 언급했던 빗썸의 불투명하고 기형적인 지배구조는 리스크가 어떻게 발생하고 은폐되며 확대되는지 결정하는 기업 유전자에 가깝다.

빗썸의 사례는 통제받지 않는 지배구조 그 자체가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증명했다.

<다음 3회차 예고>
<제3회: 독점적 사업모델의 함정 — "심판이 선수로 뛰는 시장, 설계된 이해상충">을 통해 상장·거래·보관·감시가 하나의 구조에 결합된 사업모델이 어떻게 이해상충을 기본값으로 내재하며, 사고를 구조적으로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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