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오비, 원가 하락에도 가격 인상…빙그레도 물류비 뻥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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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 국세청 기자실에서 먹거리, 생필품 등 장바구니 물가 불안을 야기하는 '민생 침해' 탈세자 14개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설 명절을 앞두고 담합과 폭리로 장바구니 물가를 위협한 14개 식품 및 유통 업체가 국세청의 집중 조사를 받게 됐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곰표' 밀가루 대한제분, 양조간장 샘표식품, 설탕 제조사 삼양사 등을 대상으로 4차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9일 밝혔다.
탈루 혐의액만 5000억 원에 달하는 이번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 전쟁' 의지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 대한제분, 서민들 물가에 허리띠 졸라맬 때…'사다리 타기' 담합
검찰 기소를 통해 6조 원대 담합 혐의가 드러난 대한제분의 탈세 수법은 대담하고도 노골적이었다.
국세청에 따르면 대한제분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경쟁사들과 가격 인상 순서를 사전에 공모하여 밀가루 가격을 44.5%나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임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사다리 타기'로 가격 인상 선도 업체를 정하는 원시적인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법상 가장 엄격히 금지된 경성 카르텔 행위를 마치 게임하듯 결정한 것이다.
담합으로 챙긴 부당이익은 최소 800억 원으로 추정되지만, 정당한 세금 납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한제분은 담합 업체들과 허위 계산서를 주고받으며 원재료 매입 단가를 부풀려 법인세를 축소하는 전형적인 탈세 수법을 동원했다.
뿐만 아니라 대한제분은 명예회장의 장례비를 회사 경비로 처리했다. 사주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고급 스포츠카의 수리비와 유지 관리비도 법인 비용으로 대납했다.
서민들이 밀가루 가격 인상에 허리띠를 졸라맬 때, 오너 일가는 회삿돈으로 초호화 장례를 치르고 스포츠카를 굴린 셈이다.
국세청은 또한 대한제분이 창업주 일가에 인건비 70억 원 이상을 과다 지급하고, 계열사로부터 가공식품을 10억 원어치 고가 매입한 정황도 포착했다.
다른 계열사로부터는 상표권 사용료 80억 원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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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진=한국식품산업협회) |
◇ 샘표·오비, 원가 하락에도 가격 인상…빙그레도 물류비 뻥튀기
양조간장 제조사 샘표식품의 사례는 전형적인 '탐욕 인플레이션'을 보여준다.
샘표식품은 지난해 영업이익 247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82% 급증했다. 지주사 샘표 역시 영업이익이 243억 원으로 314% 폭증했다.
이러한 이익 급증의 배경에는 원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주요 제품 가격을 10.8% 인상한 가격 정책이 있었다. 원가는 떨어지는데 판매가는 오르는 기현상이 기업의 배만 불린 것이다.
국세청 조사 결과 샘표식품은 창업주 자녀가 대표로 있는 계열사에 행사비 70억 원을 과다 지급하고, 포장 용기를 시세보다 20억 원 이상 비싸게 매입하여 이익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고액의 임차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도 이익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간식인 아이스크림 등을 제조하는 빙그레 역시 '물류비 뻥튀기'로 제 잇속을 챙겼다.
빙그레는 특수관계법인에 정상 가격보다 높은 물류비 250억 원을 지급하며 이익을 몰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국세청은 이로 인한 비용 상승분이 제품 가격 25% 인상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간식비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판단했다. 빙그레에 대한 추징액은 200억 원대에 이른다.
국내 맥주 시장 1위 오비맥주는 시장 지배력 유지를 위해 불법 리베이트를 살포했다.
도소매상과 유흥업소 등에 1100억 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이를 '광고선전비'로 위장 회계 처리했다.
또한 실체 없는 특수관계법인, 이른바 '빨대 기업'을 통해 원재료 구매 대행 수수료 명목으로 460억 원을 지급하며 '통행세' 구조를 운영했다.
국세청은 이러한 불법 비용이 오비맥주 제품 가격 22.7% 인상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맥주 가격의 20% 이상이 기업의 불법 영업비용으로 전가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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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밀가루 제품. (사진=연합뉴스) |
◇ 1차 조사만 1785억 원 추징…국세청 '무관용' 원칙
국세청은 지난해 9월부터 과도한 가격 인상으로 폭리를 취한 103개 업체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미 완료된 1차 조사(53개 업체)에서만 3898억 원의 탈루 소득을 적발하고 1785억 원을 추징했다.
특히 국민 먹거리 독과점 업체 3곳의 추징세액 합계는 약 1500억 원으로 전체의 85%를 차지했다. 독과점을 악용해 가격을 올리고 늘어난 이익을 빼돌린 수법이 확인된 것이다.
국세청은 오비맥주를 포함해 12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오비맥주의 추징세액만 1000억 원에 달했다.
이번 4차 조사 대상은 △가격 담합 등 독과점 가공식품 제조업체 6곳 △농축산물 유통업체·생필품 제조업체 5곳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3곳 등 총 14개 업체다.
여기에는 할당관세 혜택을 받아 원가를 절감하고도 판매가를 올린 청과물 유통업체, 제품 용량을 몰래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꼼수를 쓴 분식 프랜차이즈 등이 포함됐다.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경찰의 조사로 담합 및 독과점 행위가 확인된 업체에 대해서는 즉시 조세탈루 여부를 정밀 분석해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할당관세 혜택을 악용한 수입업체와 시장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을 인상한 밀가루·설탕 등 국민 먹거리 제조업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무조사는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도 적지 않다.
여당 지지율(52%)이 야당(36%)을 앞서고 있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민심을 뒤흔들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가 불안의 주범은 정책 실패가 아닌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서는 세무조사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추징금 규모가 기업들이 거둔 수조 원대의 초과 이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과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보다 근본적인 법적 제재 수단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