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 상장이란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회사가 알짜 사업부문을 분할한 뒤 이를 재상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모기업과 자회사가 동시 상장돼 국내 주식시장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중복 상장에 대해 제동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중복 상장 이슈가 있던 기업들이 IPO 일정을 조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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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 SK엔무브·배터리솔루션즈·미코세라믹스 등 IPO 연기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킵스파마(옛 케이피에스)의 자회사 배터리솔루션즈는 올해 안에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포기 의사를 밝혔다.
배터리솔루션즈는 지난 17일 투자자들에게 "전날까지 상장예비심사청구 신청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주주들의 반대가 있어 이번 상장예심청구 진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도 상장예비심사 청구 계획을 보류했다. SK엔무브가 상장하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비판이 확대되면서다.
이에 한국거래소가 SK엔무브 상장으로 인한 SK이노베이션 주주 피해를 막을 수 있는 합리적인 투자자 보호 계획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일단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미코도 자회사 미코세라믹스의 중복 상장 이슈를 우선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서 한국거래소가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스코에 대해서 이달 상장 예심 미승인 통보를 내리자, 관련 이슈가 있는 기업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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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IBK투자증권 |
◇ 국내 증시 중복상장 비율 18% 달해 '비정상'
국내 주식시장에서의 중복 상장 이슈는 최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시장의 높은 중복상장 비율은 약 18%로 국내 주식시장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일본, 대만, 미국, 중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각각 4.38%, 3.18%. 0.35%, .1.98%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시장의 비율은 지나치게 높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스탠다드는 상장사가 중복상장을 제거하여 주주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머징 비교 국가인 대만, 중국과 비교하면 국내 중복상장 비율은 비정상적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 순이익 더블카운팅 비율 11% 수준...주가 할인 불가피
중복상장이 주가 할인요인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이익 더블카운팅 때문이다. 국내 증시의 중복 상장에 따른 연간 지배주주 순이익 기준 더블카운팅 비율 평균(2019~2023년)은 11%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전 코스피 중복 상장 비율은 5% 이내였지만, 이후 10% 전후의 중복상장 비율로 상승했다.
2010년 이후 모회사가 상장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회사 IPO, 기존회사의 유망한 사업부서를 분할하여 신규 법인을 설립한 후 IPO, 상장법인이 인적 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사업회사로 재상장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중복 상장 비율은 15%를 초과하였다. 상장사의 이차전지 자회사 상장 증가, 상장한 이차전지 기업들의 이익이 급증하면서 더블카운팅 비율이 증가하였다.
김종영 연구원은 "코스피의 중복 상장 비율이 증가하고 있기에, PER, PBR 밸류에이션 할인은 더 증가할 것"이라며 "국내 지수 밸류에이션 시 보수적으로 순이익의 10~15% 수준을 할인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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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한국거래소·정치권 등 중복상장 제동걸까
최근 중복상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데다 한국거래소가 대선을 앞두고 오스코텍 자회사 제노스코에 대해 상장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중복상장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중복 상장 제한 등 일반 주주 권리 보호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지난 1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재표결 후 부결돼 최종 폐기됐다.
하지만 여당은 중복 상장 문제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상법 개정안이 부결됐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민주당과 협의에 적극 나서겠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안만 통과돼도 개미 투자자들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알파경제 김혜실 기자(kimhs211@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