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명 법무 조직도 침묵하게 만든 ‘상명하복’의 덫
화려한 안전경영 선포식과 수백 건의 시정 조치 발표 뒤에서도 현장의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SPC 제빵공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산업재해는 "위험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당연한 원칙이 현장의 생산성 압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알파경제>는 규정집 속에만 갇혀 있는 기업 내부통제의 실효성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와 구조적 한계를 통해 3편의 분석 기사로 자세히 짚어봤다. [편집자주]
① 반복된 안전 선언, 현장 생산라인은 왜 멈추지 못했나
② 반복된 내부거래 논란, 이사회는 왜 작동하지 못했나
③ 반복된 노무 리스크, 준법체계는 왜 작동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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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문선정 기자] 2024년 4월 검찰은 SPC그룹 허영인 회장과 전·현직 임원 등을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SPC 계열사 PB파트너즈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민주노총 소속 제빵기사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승진 과정에서 차별을 가했으며,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 가입을 지원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했다.
공소사실에는 도 포함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노조 대응 관련 보고와 지시가 회장과 그룹 경영진, 대표이사, 임원, 사업부장, 현장관리자로 이어지는 조직 내부 지휘체계를 따라 전달됐다고 판단해 기소에 반영했다.
현재 형사재판은 진행 중이며 최종 사실관계는 법원 판단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지만, 내부통제 관점에서는 이미 특정 부분에서 중요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조직 내부의 준법·윤리 시스템이 위법 가능성이 있는 지시를 어느 단계에서 차단했는지, 실제 견제 기능이 작동했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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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2017년 불법파견 잔혹사, 노조 잔혹사로 이어지다
이 사건을 되짚어 보면, 2017년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에 대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SPC 계열 협력업체 소속 제빵기사와 카페기사 총 5378명에 대해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렸다. 동시에 협력업체들의 연장근로수당 등 110억1700만 원 규모 체불임금 문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노동부가 본 핵심은 운영 구조였다. 외형상으로는 협력업체 소속 인력이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본사가 채용과 평가, 업무지시, 근태관리 등에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본사가 현장 인력 운영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은 이후 불거진 노조 대응 문제와도 연결된다. 현장 인력의 운영 구조가 본사 중심으로 관리되고 있었다면, 노조 대응 역시 개별 관리자 차원이 아니라 조직 전체 차원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PB파트너즈 대표이사와 전·현직 임원, 사업부장, 중간관리자 등 총 28명을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노동부는 민주노총 소속 제빵기사들에 대한 노조 탈퇴 종용과 승진 차별 정황 등을 송치 내용에 포함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은 2022년 12월과 2023년 10월 SPC그룹 본사와 PB파트너즈 본사, 임원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수사는 현장 관리자 수준을 넘어 그룹 차원의 개입 여부로 확대됐다.
검찰 공소사실은 회장과 그룹 경영진에서 시작된 지시가 대표이사와 임원, 사업부장, 현장관리자를 거쳐 현장에 전달됐다는 구조를 담고 있다. 이 구조가 재판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 인정된다면 문제는 일부 관리자 개인 행동 수준을 넘어 조직 내부 윤리통제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내부통제는 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자를 특정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법 가능성이 있는 지시가 조직 내부를 따라 내려가는 과정에서 누군가 이를 중단시키거나 최소한 위험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조직 내부 지휘라인의 입김이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작동한 정황이 수사 단계에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승진평가와 개인정보 활용 문제다. 검찰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낮은 승진평가를 부여하거나, 제빵기사 개인정보를 노조 탈퇴 작업에 활용한 정황 등을 공소사실에 포함했다.
전대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승진평가권과 개인정보 접근권은 원래 조직 운영을 위해 부여된 권한”이라면서 “그런데 이 권한들이 노조 탈퇴 유도나 조합원 불이익 부여라는 목적에 동원됐다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상부의 지시를 기존 업무 권한의 연장선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 위법 행위임을 인식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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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30명 법무 조직도 침묵하게 만든 ‘상명하복’의 덫
이전 회차에서 언급한 것처럼, SPC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준법지원인과 컴플라이언스 조직, 윤리경영위원회, 내부 신고 채널인 ‘SPC Hot-Line’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그룹 내에는 약 30명 규모 법무조직과 약 15명 규모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운영되고 있으며, 익명 제보와 신고자 보호 절차도 마련돼 있다고 기재돼 있다.
하지만 내부통제는 신고 채널을 마련한 것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조직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구조였는지가 중요하다.
노조 문제처럼 인사평가와 승진, 현장 배치, 관리자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에서 내부 제보는 상당한 부담을 동반할 수 있다. 자신의 직속상사와 조직 방향에 반대 의견을 내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과 압박과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조직에서는 문제 제기보다 조직 보호 논리가 우선해야 할 규범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내부 신고 채널은 실제 현장에서 침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위법 가능성이 있는 지시라도 조직 내에서는 “업무 처리”나 “현장 안정화”라는 명분으로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다. 내부통제가 약해지는 과정은 이런 조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SPC 사례는 이 부분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준법지원인도 있었고, 윤리경영위원회와 컴플라이언스 조직도 있었다. 내부 신고 채널 역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부 송치와 검찰 압수수색, 회장 기소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조직 내부 견제 기능이 어느 단계에서 작동했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 문제는 SPC만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 한치호 경제평론가 겸 행정학 박사는 “성과 압박이 강하고 인사권이 수직적으로 집중된 조직에서는 비슷한 위험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조직 충성과 실적 중심 문화가 법적 경계보다 앞서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위법 가능성이 있는 지시라도 내부에서 충분히 제동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파경제 문선정 기자(moonsj@alpha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