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조치 완료’와 현장의 괴리…사라진 LOTO 절차
법에만 존재하는 ‘작업중지권’과 현장의 보이지 않는 압박
감독계획서 유출이 보여준 조직 문화, 그리고 내부통제의 한계
화려한 안전경영 선포식과 수백 건의 시정 조치 발표 뒤에서도 현장의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SPC 제빵공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산업재해는 "위험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당연한 원칙이 현장의 생산성 압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알파경제>는 규정집 속에만 갇혀 있는 기업 내부통제의 실효성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와 구조적 한계를 통해 3편의 분석 기사로 자세히 짚어봤다. [편집자주]
① 반복된 안전 선언, 현장 생산라인은 왜 멈추지 못했나
② 반복된 내부거래 논란, 이사회는 왜 작동하지 못했나
③ 반복된 노무 리스크, 준법체계는 왜 작동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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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김영택 기자] 지난 2022년 10월 15일 새벽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 설비 작업 중 사고로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고 가운데 하나였다. 사고 직후 SPC그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1000억 원 규모의 안전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허영인 회장은 안전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정비하겠다고 밝혔고, 그룹 차원의 안전경영 강화와 외부 전문기관 점검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SPC 계열 공장에서는 유사한 유형의 사고가 이어졌다. 2023년 8월 경기 성남의 샤니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반죽 설비 작업 도중 사고를 당한 뒤 치료 중 숨졌고, 2025년 5월에는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 설비 주변 작업 중 사망했다. 이어 2026년 4월 같은 시화공장에서는 센서 교체 작업 중 노동자 2명이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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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고용노동부 기획감독이 들춰낸 ‘생산 우선’의 민낯
사고가 반복되자 고용노동부의 표현도 점점 강해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6년 시화공장 사고와 관련해 “총체적인 안전경영 관리 위기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언급했다. 단순히 현장 실수나 특정 설비 결함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10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실시한 SPC 계열사에 대한 기획감독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상당히 광범위했다. 당시 노동부는 SPC 계열 12개사 52개 사업장을 점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277건을 적발했다.
안전장치 미설치, 위험구역 방호조치 미흡, 안전보건관리 체계 운영 부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문제 등이 포함됐다.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된 기계 44대에는 사용중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15개 계열사 33개 사업장에서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위반 116건과 12억 원이 넘는 체불임금 문제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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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고용노동부, 제미나이 AI 생성) |
당시 노동부는 브리핑에서 “조금 더 빠르게 생산하고 조금 더 편하게 일하기 위해 지켜야 할 안전을 덮어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독기관이 짚은 문제점도 단순히 안전 관련 규정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생산을 우선하는 문화에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SPC는 이후 “산업안전 관련 지적사항 277건 가운데 276건을 조치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2023년에는 안전경영 선포식과 외부 전문가 참여 확대 방안도 내놨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사고 이후 조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발생한 사고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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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서류상 조치 완료’와 현장의 괴리…사라진 LOTO 절차
2025년 시화공장 사고 당시 경찰은 공장이 '풀가동' 상태였고, 컨베이어 설비 문제로 인해 윤활 작업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조사했다. 생산라인이 완전히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유지·보수성 작업이 진행됐는지가 중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SPC가 2022년 사고 이후 수백 건의 안전 지적사항을 조치 완료했다고 밝혔음에도, 작업 중 설비를 멈추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 이른바 ‘잠금·태그아웃(LOTO)’ 절차이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2026년 센서 교체 작업 사고 역시 설비 주변 작업 중 발생해, 같은 의문은 반복됐다.
식품 제조업은 생산라인 정지 자체가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가동률과 납기, 생산량 압박이 동시에 걸려 있는 구조다. 이런 환경에서는 유지·보수 작업조차 라인을 최대한 멈추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기 쉽다. 안전 규정이 마련되어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는 생산성과 충돌하게 되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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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법에만 존재하는 ‘작업중지권’과 현장의 보이지 않는 압박
이 지점에서 내부통제가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제1항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사업주가 작업중지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법 조문만 보면 위험 상황에서는 누구든 생산라인을 멈출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법 조문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연구보고서 <작업중지권 실효성 제고 방안 연구>는 현장에서 작업중지권 행사가 쉽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조흠학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연구책임자는 “급박한 위험 기준이 불명확하고, 작업중지 이후 관리자 압박이나 인사상 불이익 가능성, 생산 차질 책임 부담 때문에 실제 권리 행사가 위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특히 생산라인 중심 제조업에서는 작업중지가 안전조치보다 생산 차질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도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SPC 사고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읽힌다.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생산라인 정지 결정은 현장 실무자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관리자 눈치와 생산 목표, 인사평가 부담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 “위험하면 멈춘다”라는 인식보다 “일단 생산을 유지한다”가 더 강한 문화로 자리 잡으면 안전 규정은 현장에서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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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감독계획서 유출이 보여준 조직 문화, 그리고 내부통제의 한계
2022년 노동부 감독 과정에서 SPC 계열사 직원이 감독계획서를 촬영해 사내 메신저로 공유한 사건 역시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노동부는 당시 공무집행방해 혐의 신고와 과태료 부과 방침을 밝혔다. 외부 감독을 현장 개선의 계기로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사전에 대응해야 할 변수로 인식했는지는 조직 문화 수준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한치호 경제평론가 겸 행정학 박사는 알파경제에 “SPC 사례는 한국 기업 내부통제의 오래된 한계를 다시 보여줬다”면서 “많은 기업이 내부통제를 안전 규정 작성과 점검표 중심으로 접근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생산을 멈출 수 없는 구조라면 사고 위험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안전경영의 수준은 선언문 발표로 높아지지 않는다”면서 “사고 위험의 순간에 누구든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조직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인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알파경제 김영택 기자(sitory0103@alpha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