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한화에어로, 개미들 울린 3.6조 유상증자…상법개정 빌미줄까

인사이드 / 이준현 기자 / 2025-03-27 08:37:43
사상 최대 실적에도 '쌈짓돈' 꺼내라는 3.6조 유상증자
"주주 희생 강요해"...유증 사태에 상법개정 필요성 목소리 높아져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표한 3조6000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로 인해 재벌의 소액주주 경시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상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실시한 대규모 유상증자는 소액주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가운데,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 마련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 사상 최대 실적에도 '쌈짓돈' 꺼내라는 3.6조 유상증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일 이사회에서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해외 현지 공장 설립과 방산 협력 지분 확보에 1조6000억원, 국내 사업장에 9000억원, 미국 해양 방산·조선 생산 거점 확보에 8000억원, 무인기용 엔진 개발에 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재무 상태를 살펴보면 이 같은 거액의 유상증자 필요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3년 매출은 11조4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조7319억원으로 무려 191%나 급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23년 말 기준 회사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2조9677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주잔고는 61조9146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대규모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영업활동을 통한 이익 창출이 원활한 상황에서 실시한 대규모 유상증자는 소액주주들의 지분 희석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최근 논평을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본시장의 원칙인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했다"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사회가 현 자본구조 및 미래 현금흐름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유상증자는 소액주주들이 자금 여력이 부족하거나 참여하지 않을 경우 지분율이 희석될 위험이 크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3.02%(9만4000원) 급락했다.

이는 소액주주들에게 직접적인 손실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향후 주식 가치 희석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 "주주 희생 강요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는 지분 33.95%를 보유한 ㈜한화다.

이번 3조6000억원 유상증자가 주주배정 후 실권주 배정방식으로 진행됨에 따라 ㈜한화는 자신의 지분율에 해당하는 1조2222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당초 ㈜한화의 최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별도재무제표상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고작 1868억원에 불과해 유상증자 참여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는 유상증자에 필요한 금액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최대주주가 제대로 참여하지 못할 경우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더욱 희석되거나, 참여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평가다.

그러나 한화 이사회는 26일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직후 이사회를 열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참여를 결정했다.

취득주식수는 162만298주로 취득금액만 9803억원에 달한다. 자기자본 대비 2.95%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화는 이날 공시를 통해 "지속적 고성장 예상 종속회사 사업에 대한 투자로 기업가치 제고와 지배력 유지한다"고 취득 목적을 설명했다.

다만, 한화의 이번 결정은 자금 여력을 초과하는 무리한 참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비판 여론을 의식했는지 한화그룹은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 계획도 발표한 바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을 약 30억원(4900주) 규모로 매수하고, 손재일 사업부문 대표와 안병철 전략부문 사장도 각각 9억원(1450주), 8억원(약 1350주) 규모를 매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상징적 조치는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비하면 고작 48억원으로, 전체의 0.13%에 불과한 미미한 수준이다.

주주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향후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3조6000억원 유증에 겨우 48억원 매수로 퉁 치려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주주는 "돈을 잘 벌어서 주가가 올랐는데 실컷 번 돈으로 한화오션 지분 매입에 1조원 넘게 사용하고, 이제 돈 없다면서 주주들 호주머니를 털려고 3조6000억원을 내놓으라고 한다"면서 "주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 (사진=한화)


◇ 유증사태에 상법개정 필요성 목소리 높아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번 유상증자 사태는 한국 자본시장의 후진적 구조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현행 법제도 하에서는 기업이 소액주주의 이익보다 대주주나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마땅한 장치가 없다.

특히 유상증자 발표 직전인 지난 2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김동관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계열사들로부터 한화오션 지분 7.3%를 약 1조3000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블록딜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거래로 인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이 유출됐고, 이 자금은 다시 한화에너지로 유입됐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패밀리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계열사로부터 한화오션 지분을 사 오는 데 1조3000억원을 지출한 지 일주일 만에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양새는 일반주주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회사 여유 자금은 지배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 주식을 인수하는 데 쓰고, 신규 투자금 역시 일반주주에게 부담시키려는 모습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총수 일가가 간접적으로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한 직후, 자금 부족을 이유로 소액주주에게 유상증자 참여 부담을 지우는 행태는 현행 상법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상법 개정안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상증자로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 주주들이 개정 상법을 근거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국투자자연합회는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보낸 서신에서 "후진국 수준의 K증시 환경을 하루라도 빨리 개혁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이며, 상법 이사충실의무 개정이 그 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주주 커뮤니티에서는 "재벌이 주주들에게 하는 걸 보고도 상법개정안을 반대한다면 매국노나 다름 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례를 보고도 상법 개정을 안 한다면 국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라는 격앙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가 촉발한 논란이 상법 개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사태가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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