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휴식권 vs 소비자 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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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강제화하는 법안이 재추진되면서 다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규제가 오히려 온라인 쇼핑 급성장만 부채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소비자 편의와 노동자 권익이라는 가치 충돌도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의원이 지난해 9월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본격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의 핵심은 현행법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반드시 공휴일에 문을 닫아야 한다.
소상공인연합회장 출신인 오 의원은 지난 9일 "우리 당이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공언하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설정하도록 한 원칙을 폐기하고 평일 휴업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대구시를 시작으로 서울 서초구, 동대문구, 경기 의정부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총 14건이며, 이 중 8건이 대형마트 영업 제한 강화 관련이다.
민주당은 지난 3월 발표한 '민생분야 20대 의제'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공휴일 제한을 포함시켜 강력한 재규제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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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진열된 고구마. (사진=연합뉴스) |
◇ 마트 문 닫는다고 전통시장 갈까…실효성 논란도
하지만 12년간 축적된 데이터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의 실효성에 대해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22년 농촌진흥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기준 전통시장의 일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630만원)보다 오히려 낮았다.
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소비자들은 슈퍼마켓·식자재마트(46.1%), 대형마트 재방문(17.1%), 온라인 거래(15.1%)를 이용하며, 전통시장 이용률은 고작 11.5%에 불과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전통시장 이용률은 16.2%에 머물렀다.
반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지역에서 전통시장 매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광역시는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한 후 6개월간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전체 소매업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8% 증가했고, 전통시장 매출은 무려 32.3%나 급등했다고 밝혔다.
산업연구원(KIET)의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구시와 충북 청주시에서 대형마트가 주말에 영업하자 오히려 주변 상권의 매출이 평균 3.1% 증가하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
대형마트가 '앵커 스토어' 역할을 하며 유동인구를 끌어모으고, 이들이 인근 전통시장과 상점들을 함께 이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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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 "마트 문 닫는다고 전통시장 안 가"
의무휴업 규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전통시장이 아니라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었다.
전체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6.5%에서 2023년 50.6%로 과반을 넘어섰다.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온라인 쇼핑의 연평균 성장률은 12.6%로 대형마트(1.2%)의 10배에 달했다.
특히 쿠팡은 연매출 40조원을 돌파하며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다. 반면 대형마트는 통계청 기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16년째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러한 격차는 규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되어 새벽배송이 불가능하다. 의무휴업일에는 온라인 배송마저 금지된다.
반면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은 24시간 서비스가 가능하며, 새벽배송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온라인 유통 거래액이 오프라인을 넘은 상황에서 대형마트 규제 강화가 소상공인 보호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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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초콜릿 등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소비자 편의 vs 노동자 권익 '충돌'
의무휴업 강화 법안이 추진되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 그리고 노동자 휴식권 보장이라는 명분 때문이다.
마트산업노동조합은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제도는 근로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주장한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현행 평일 휴무제에 대해 "오히려 피로를 누적시키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휴무 전후로 물류 작업과 고객 응대가 몰리면서 실질적인 휴식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마트 직원은 "공휴일 의무휴업이 재도입되면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소비자 여론은 정반대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소비자 4명 중 3명(76.4%)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폐지나 완화를 원한다고 답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직장인들에게 공휴일은 일주일치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전용기 의원은 "공휴일은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등 취약 소비층의 주요 소비 시간"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장철민 의원도 "온라인 유통 확산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30대 여성도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전통시장을 가지는 않고, 온라인 쇼핑 및 배달 등으로 주문을 한다"며 "반대로 마트가 열면 장을 보러 갔다가 주변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다른 가게들도 들러보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동권과 유통 규제를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