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무관용 정책 vs 기존 솜방망이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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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 제64회 정기총회에서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척결 의지를 시험하는 첫 번째 사례가 등장했다.
금융당국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새 정부의 '원스트라이크 아웃'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 4000억 원 vs 무관용 원칙…첫 번째 시험대에 오른 방시혁
방시혁 의장은 2020년 하이브 상장 당시 주주에게 기업공개(IPO) 계획이 없다고 속여 주식을 팔게 한 뒤, 이후 수천억 원의 상장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방 의장은 하이브 IPO가 이뤄지기 전인 2020년, 자신과 가까운 하이브 간부들이 세운 사모펀드와 상장에 따른 지분 매각 차익의 30%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투자자들에게는 상장 계획이 없다고 알린 뒤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해당 펀드에 주식을 매도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전형적인 정보 비대칭성을 악용한 사례다.
투자자들이 상장 계획을 알았다면 주식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이브의 IPO 당시 공모가는 13만5000원이었는데, 상장 첫날 주가가 장중 35만 원을 넘으며 2배 이상 올랐다.
방 의장의 부당이득 규모도 상당하다. 방 의장은 이 가운데 약 4000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정산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위법 행위로 얻은 이익이 50억 원을 초과할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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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3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원스트라이크 아웃' 도입했지만...소급 적용 불가 어려워
아이러니한 점은 이재명 정부가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했지만, 방시혁 사건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부당이득에 과징금을 물려 환수하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자를 엄벌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새로운 사건에만 적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첫날로 삼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불공정거래 척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부는 실행 조직도 대폭 개편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에 분산된 기능을 합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이 발족한다.
금감원 부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합동대응단은 금융위 4명, 금감원 18명, 거래소 12명 등 34명으로 구성돼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을 초기부터 함께 조사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방시혁 사건은 2019-2020년 발생한 사안으로 새로운 제재 시스템의 효과를 직접 검증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검찰 고발이 현실화되면, 증시 교란 행위에 대해 강한 처벌 의지를 천명해온 이 대통령 취임 이후 금융당국이 주요 인사에게 내리는 첫 고강도 제재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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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하이브) |
◇ '주가조작=솜방망이 처벌' 이미지 벗을까
한국의 주가조작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비판은 오래된 문제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강병원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증권시장 3대 불공정거래로 처벌받은 이들의 23%가 재범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대법원이 불공정거래 사건에서 피고인 5명 중 3명은 실형을 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범죄수익 환수의 어려움이다. 지난 2016년 코스닥 상장사 에스티아이글로벌을 무자본 인수한 뒤 호재를 조작해 180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한씨에 대해 선고된 벌금은 4억5000만원이 전부고, 범죄로 얻은 수익금은 단돈 1원도 추징되지 않았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한탕하고 감옥 다녀오면 된다'는 식으로 범죄를 획책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는 적발을 해도 조사가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고 제재와 처벌이 미흡해 재범률이 평균 29%를 넘을 정도라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다.
반면 해외는 엄벌주의가 확고하다. 미국의 경우 주가조작 사범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지키고 있다.
앞서 2017년에도 중국 금융 당국은 개인 간 대출(P2P)업체인 상해다륜실업의 시안 얀 회장에 대해 주가 조작 혐의로 34억8000만 위안(한화 5739억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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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 글로벌 스탠더드 vs 한국적 현실…변화 가능할까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법원의 판단이 관건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언아웃 계약 자체는 IPO 과정에서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국내 유사 사례가 적어 향후 사실관계와 법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핵심은 투자자들에게 고의로 허위 사실을 제공했는지, 주요 사항을 공시에서 누락한 행위가 허위공시로 판단될지 여부"라고 말했다.
방시혁 사건의 처리 과정은 여러 측면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금융당국은 불법적인 이익이 남아있는 계좌에 한해서는 조사 단계에서부터 신속하게 지급 정지 절차를 밟는다고 밝혔지만, 실제 적용 여부가 주목된다.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대두된다. 현재 검찰이나 금융당국이 부당이득액을 산정하는 방식은 위반행위에 따른 수입에서 거래를 위해 쓰인 비용을 빼는 '차액산정방식'이다. 하지만 검사가 제시한 부당이득에 대해 법원이 그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해왔다.
이 때문에 부당이득 산정 방식의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시혁 사건은 이재명 정부의 '원스트라이크 아웃' 정책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한국 자본시장이 진정한 선진화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