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루닛, 2600억원 볼파라 인수…전략적 도전인가 과도한 모험인가

인사이드 / 이준현 기자 / 2024-10-17 08:25:53
볼파라 인수 금액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루닛, 영업손실 확대 "볼파라 인수 비용 증가"
루닛, 볼파라 인수로 미국 시장 진출 가속화
루닛 "의료 AI 시장 아직 초기 단계…유예 기간 필요해"
(사진=루닛)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선두기업 루닛이 2600억원을 투자해 뉴질랜드 기업 볼파라를 인수한 것을 두고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인수 금액의 적절성과 미국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과도한 모험'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가운데 루닛은 볼파라 인수의 전략적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 볼파라 인수 금액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루닛은 지난 5월 뉴질랜드 소재 의료 AI 기업 볼파라를 2600억원에 인수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루닛의 볼파라 인수 금액을 두고 업계에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볼파라의 연간 매출은 약 350억원이며, 순손실은 약 70억원 수준"이라며 "2600억원을 주고 미국 기업도 아닌 뉴질랜드 기업을 사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루닛 측은 알파경제에 "기업 인수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가치 투자하는 것"이라며 "현재도 인수 이후 분기 이익은 넘어설 정도로 세일즈는 잘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볼파라 매출도 작년에 비해 올해는 2배 정도 점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사진=루닛)


◇ 루닛, 영업손실 확대 "볼파라 인수 비용 증가"

루닛은 올해 2분기 매출액 122억3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6% 증가했다.

상반기 누적 매출액은 173억7000만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해외 매출이 145억6700만원으로 전체 매출의 83.9%를 차지했다.

미국 법인(Lunit USA, Inc.)에서 48억53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볼파라의 매출 65억원이 반영되면서 해외 매출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다만, 볼파라 인수에 따른 비용 증가도 두드러졌다.

올해 2분기 영업손실은 199억4400만원,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은 327억46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루닛 측은 이러한 손실 확대가 볼파라 인수에 따른 비용 증가와 핵심 제품의 연구개발(R&D) 및 글로벌 판매망 강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서범석 루닛 대표. (사진=루닛)


◇루닛, 볼파라 인수로 미국 시장 진출 가속화

루닛은 이번 인수의 주요 목적으로 미국 의료 AI 시장 진출 가속화를 꼽았다.

루닛 측은 "미국 시장은 굉장히 특수하고 어려운 시장"이라며 "미국 내 직접 판매 역량이 부족한 만큼 이미 유통망이 잘 깔려 있는 회사를 인수해 빠르게 진출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볼파라는 미국 내 약 2000개 의료기관에 유방암 검진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전체 매출의 97% 이상을 미국에서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범석 루닛 대표 역시 "볼파라 인수로 미국 진출 시기를 5년이나 앞당기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루닛은 이러한 볼파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사의 AI 솔루션을 효과적으로 유통할 계획이다.

또한 루닛은 "루닛이 채용하기 힘든 우수 인력을 흡수 합병을 통해 고용승계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제품 개발과 제품 고도화를 추진하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아무리 파이프라인이 있다 해도 2600억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며, 루닛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손실이 각각 250억원, 422억원인 걸 감안하면 매출액의 10배가 넘는 규모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사진=루닛)


◇ 루닛 "의료 AI 시장 아직 초기 단계…유예 기간 필요해"

루닛은 이번 인수를 통해 의료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지난 5월 기자 간담회를 통해 "AI 성능과 정확도가 높아지면 의사 개입 없이 AI 자체만으로 암 진단을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볼파라가 보유한 약 1억 장의 유방 촬영 이미지 데이터가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당시 서 대표는 "루닛이 5년간 모은 데이터의 70배 이상을 매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다만, 의료 AI 시장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루닛 관계자는 "의료 AI 쪽은 글로벌 시장에서 모든 기업이 거의 다 적자인 상황"이라며 "시장이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만큼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여전히 루닛의 볼파라에 인수를 두고 경영권 행사를 위해 60~70% 지분만 인수해도 충분한데 100% 인수한 것은 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루닛 관계자는 "뉴질랜드 현지 법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현지법상 경영권만 가져오는 것은 안 되고, 100% 인수하는 것이 더 이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사진=루닛)


◇ 루닛, 볼파라 인수에 1700억 규모 CB 발행

볼파라 인수를 위해 루닛은 171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는 최근 2년간 제약바이오업계 평균 조달액인 172억원의 약 10배에 달하는 규모다. 

 

루닛 측은 이를 다수의 기관투자자들을 포함한 시장에서 루닛의 볼파라 인수와 중장기 경영 전략에 공감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루닛은 이번 전환사채를 포함해 코스닥 상장 이후 2년간 약 4000억원에 달하는 유상증자와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중 볼파라 인수에 약 2647억원을 투입했으며, 나머지는 운영자금과 연구개발, 글로벌 시장 진출 등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를 통해 2025년 중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닛의 이번 결정은 급성장하고 있는 의료 AI 시장에서의 도약을 위한 전략적 도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수 금액의 규모와 재무구조의 변화를 고려할 때, 일각에서는 이를 과도한 모험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루닛의 볼파라 인수가 성공적인 전략이 될지,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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