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기는 설계도가 아니라 완성품이다
매몰 비용이 아닌 시장 확보의 관점으로
감정적 민족주의보다 전략적 실용주의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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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김상진 대표기자] 최근 KF-21 분담금 재협상 결과가 발표되자 기다렸다는 듯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깎아버린 분담금만큼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이고 시제기 1대를 제공하는 것은 자기집 안방 비밀번호를 넘겨주는 기술 조공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앞서 언급한 주장들은 복잡한 방산 생태계와 국제 정치의 메커니즘을 무시한 채 대중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
◇ ‘준 기술’이 있어야 유출도 있다…미국 통제의 벽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지점은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건네준 기술의 실체다.
현대 전투기 개발의 핵심인 레이더(AESA)와 엔진, 미션 컴퓨터 등 핵심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은 한국의 독자 소유물이 아니다. 해당 기술들은 철저하게 미국의 수출통제(EL) 시스템 하에 관리된다.
우리가 주고 싶어도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나사 하나 제대로 건넬 수 없는 것이 냉혹한 방산의 현실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 제공된 기술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술 다 빠져나간다는 주장은 미국의 촘촘한 기술 통제망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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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제기는 설계도가 아니라 완성품이다
비판 진영은 프랑스의 라팔 사례를 들며 "우리는 왜 호구처럼 구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비유부터가 틀렸다.
프랑스가 라팔을 팔면서 소스코드를 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역시 인도네시아에 전투기의 뇌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 기술(Source Code)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는 것은 시제기, 즉 눈에 보이는 기체 한 대다. 시제기는 기술의 집약체인 것은 맞다.
그렇다 해서 뜯어본다고 수천 명의 엔지니어가 수십 년간 쌓아온 소스코드를 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000억 원이라는 분담금 조정액에 상응하는 가치로 시제기 한 대를 넘기는 것은 기술 이전이 막힌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영리한 협상 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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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몰 비용이 아닌 시장 확보의 관점으로
우리는 시제기 한 대를 뺏기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라는 거대한 시장을 붙잡아두는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KF-21의 현지 버전인 IFX 48대를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 협상의 핵심 목적이다.
방위산업은 단순한 물건 팔이가 아니다. 운용과 유지, 보수(MRO) 및 후속 군수 지원까지 포함된 거대 플랫폼 사업이다.
시제기 한 대를 마중물 삼아 수십 대의 양산 물량을 확보하고 동남아시아 방산 시장의 교두보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이다.
시제기 제공을 기술 유출로 비화해 판 자체를 깨자는 주장은 소탐대실의 전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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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 감정적 민족주의보다 전략적 실용주의가 필요할 때
국방과학기술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호와 고립은 엄연히 다르다. 철저한 보안 통제 하에 약속된 시제기를 제공하고 수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비즈니스이자 전략적 선택이다.
일부 언론과 비평가들의 오버 섞인 비판은 방산 현장의 복잡한 맥락을 거세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제기 한 대에 일희일비하는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험난한 수출 통제의 파도를 넘으며 실리를 챙기는 냉철하고 전략적인 실용주의다.
알파경제 김상진 대표기자(ceo@alpha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