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농심 신라면 1000원 시대 재개…식품업계 불안 정국 틈타 '눈치 안 보는' 가격인상?

인사이드 / 이준현 기자 / 2025-03-13 08:25:13
'천원 신라면' 시대 개막
'불가피한 인상' vs '명분 없는 증가'
정부 통제력 약화 틈탄 가격 인상…도미노 현상 우려
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신라면이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라면 시장 1위 기업 농심이 주요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식품업계 전반의 가격 인상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서민 경제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 '천원 신라면' 시대 개막

농심은 최근 오는 17일부터 신라면, 새우깡을 포함한 총 17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소매점 기준 신라면 가격은 950원에서 1000원으로, 새우깡은 1400원에서 1500원으로 각각 오르게 된다.

농심의 제품 가격 인상은 2022년 9월 이후 무려 2년 6개월 만이다.

무엇보다 지난 2023년 7월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압박에 따라 신라면과 새우깡 가격을 인하했다가, 1년 8개월만에 다시 원상복구하는 형태의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2022년 9~10월 많이 올렸는데 지금은 국제 밀 가격이 약 50% 내린 만큼 다시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었다.

특히 소비자들이 식품들의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인상되며 '도미노 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상은 지난 1월 16일 마요네즈와 후추, 드레싱 등 소스류 제품 가격을 평균 19.1% 인상했고, 스타벅스 코리아는 1월 24일부터 톨 사이즈 음료 22종의 가격을 200~300원 올렸다.

SPC 파리바게뜨도 2월 10일부터 빵 96종과 케이크 25종 가격을 평균 5.9% 인상했다.

롯데웰푸드는 2월 17일부터 초코 빼빼로를 1800원에서 2000원으로 200원 올리는 등 26종 가격을 평균 9.5% 인상했다.
 

7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새우깡이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 '불가피한 인상' vs '명분 없는 증가'

식품업계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농심은 이번 가격 인상의 배경으로 팜유와 전분류, 스프원료 등의 구매비용 증가와 평균환율 상승, 인건비 등 제반 비용 상승을 꼽았다.

농심 관계자는 "그동안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원가 절감 및 경영 효율화를 추진하며 인상 압박을 견뎌 왔지만, 원재료비와 환율이 상승함에 따라 가격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7.1포인트로, 전월 125.1포인트보다 1.6% 상승했다.

이는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8.3% 오른 수치다. 특히 설탕 가격지수는 118.5로 전달 대비 6.6% 상승했고, 유제품 가격지수는 전달 대비 4.0% 오른 148.7을 기록했다.

팜유, 유채유, 콩기름, 해바라기유 등 유지류 가격지수도 2.0% 오른 156.0으로 1년 전보다 29.0% 상승했다.

곡물 가격지수도 0.7% 오른 112.6을 기록했는데, 밀 가격은 러시아의 공급 부족과 유럽, 러시아, 미국 일부 지역의 기상 악화로 작물 상태에 대한 우려가 생긴 것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환율 상승도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품업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

최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5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관세 전쟁, 그리고 지난해 12월 발생한 국내 비상 계엄령과 정국 혼란이 원화 가치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이번 농심의 가격 인상에 강한 의구심을 표했다.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알파경제에 "농심에서 이번에 가격을 올린 대표 상품인 라면의 주요 원재료 중 하나인 소맥분의 가격을 살펴보면, 2022년도부터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해 2023년도에는 전년 대비 –13.1%, 2024년도에는 전년 대비 –11.6%까지 하락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올해 1월에 들어 전년 평균 대비 3.9%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그간의 소맥분 하락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으로 보여진다"며 "최근 농심의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실제 농산유통 종합정보 시스템 '농넷'에 따르면 12일 기준 국제 밀(소맥) 선물가격은 지난해 11월 t당 202달러에서 3월 196달러로 약 3% 하락했다. 2월에는 일시적으로 212달러까지 상승했으나 3월 들어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는 2022년 10월 319.59달러, 2023년 3월 252.6달러와 비교해도 크게 하락한 수치다.

앞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지난해에도 식품업체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에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당시 "기업들이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있지만, 주요 원재료 중 일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더욱 의문을 자아내는 것은 기업들의 실적이다. 2024년 3분기(누적) 실적을 살펴보면 일부 기업은 영업이익이 오히려 증가하고 매출원가율은 하락했다.

롯데웰푸드의 매출원가율은 69.4%로 전년 동기 대비 2.9%p 하락했으며, 오리온(61.2%, -0.4%p), 빙그레(67.0%, -0.6%p), SPC삼립(84.3%, -0.3%p) 등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진열된 라면들. (사진=연합뉴스)


◇ 정부 통제력 약화 틈탄 가격 인상…도미노 현상 우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식품 가격 인상을 견제할 정부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작년까지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물가담당자를 지정하며 집중적인 가격관리를 진행해왔다. 또한 가격 인상을 자제시키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12월 발생한 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정부의 통제력은 현저히 약화됐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가격 인상 계획을 단순히 통지만 하면 되는 수준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1일 송미령 장관 주재로 17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가공식품 물가 안정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CJ제일제당, SPC삼립, 남양유업, 농심, 동서식품 등 17개 식품 기업 중 최근 1년 새 가격을 올리지 않은 곳은 네 곳에 불과했다. 참석 기업의 75%가 이미 가격을 인상한 셈이다.

식품 가격 인상의 직격탄은 결국 저소득층이 맞게 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식비 부담은 월평균 43만4000원이었다. 이는 작년 처분가능소득인 103만7000원의 무려 45%에 달하는 규모다. 식품 가격이 오르면 이들은 먹는 양 자체를 줄이는 심각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가격을 내릴 땐 '조용히', 올릴 땐 이유를 내세우며 '당당하게' 진행하면서, 결국 소비자들이 불신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소비자단체는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방적인 가격 인상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기업들도 단순한 이익 극대화 전략이 아니라 소비자와 상생하는 책임 있는 가격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정부에 대해서도 "식품업체들이 무분별하게 가격을 인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가감시센터는 "이번 가격 인상을 단행한 농심은 라면 시장에서의 선두주자로 다른 라면 제조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며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대하여 자제를 요청하고 있으나, 환율이 상승하며 수입 원재료에 의존하는 식품들의 가격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가격 인상 적극 자제를 요청함과 더불어 가격 인상 시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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