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SK텔레콤, 국회 입법조사처 판단에도 2300만 고객 외면…'위약금 면제 검토중' 변명만

인사이드 / 이준현 기자 / 2025-05-07 08:16:13
입법조사처 법적 판단에도 위약금 면제 결정 지연
위약금 면제 결정 왜 미루나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에서 열린 방송통신 분야 청문회에서 유심 해킹 사태에 대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SK텔레콤이 대규모 유심 정보 해킹 사태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났지만, 국회 입법조사처가 위약금 면제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명확한 판단을 내렸음에도 회사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유심 교체율은 전체 가입자의 4%에 불과한 100만 명에 그치고, 지난달에만 23만 명이 타 통신사로 이탈하는 등 국내 최대 통신사의 위기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 SK텔레콤, 입법조사처 법적 판단에도 위약금 면제 결정 지연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문의에 대해 SK텔레콤의 위약금 면제는 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입법조사처는 "SK텔레콤 가입 약관에 '회사의 귀책 사유로 인해 고객의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 납부 의무를 면제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이번 해킹 사태가 회사의 귀책 사유에 해당한다면 위약금을 면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입법조사처는 2016년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당시 이동통신 3사가 자발적으로 위약금을 면제했던 전례를 들며, 동일한 법적 근거로 이번에도 면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약관 적용이 불명확하더라도 회사가 자발적으로 위약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이러한 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내부 검토와 이사회 논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

김희섭 SK텔레콤 PR센터장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도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결론이 나오면 입장을 밝히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반복했다.
 

SK텔레콤이 유심 고객정보 해킹 사고로 관련 유심 무료 교체 서비스에 나선 28일 서울 시내 한 SKT T월드 매장 앞에 유심 재고 소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 위약금 면제 결정 못하는 SK텔레콤

5일 기준 유심 교체를 완료한 이용자는 약 100만 명으로, 전체 가입자 2300만 명 중 약 4%, 교체 예약자 770만 명 중에서도 12%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SK텔레콤이 유심 교체 작업에 얼마나 부실하게 준비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SK텔레콤은 5일부터 신규 가입자 모집을 중단하고 유심 교체에 집중한다고 밝혔지만, 하루에 처리 가능한 유심 교체 물량이 15만~20만 개에 그치고 있어 교체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김희섭 PR센터장은 "이달 말까지 유심 500만 개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전체 가입자의 약 21%에 불과한 수준이다.

SK텔레콤이 위약금 면제 결정을 미루는 배경에는 경영상 책임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SK텔레콤은 위약금 면제가 남은 가입 기간 이용자가 매달 낼 통신비와 대리점 수익과도 얽혀 있어 하루아침에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 보호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국내 최대 통신사의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멀다.

입법조사처는 위약금 면제 결정이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조치가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위약금 부과가 고객들의 소송이나 규제당국의 제재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SK텔레콤의 해킹 사태 대응에서도 문제점은 드러났다.

SK텔레콤이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 18일 오후 6시9분이다. 이후 같은 날 오후 11시20분 해킹 공격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날인 지난 19일 오후 11시40분 악성코드로 인해 가입자 유심(USIM) 관련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파악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지난 20일 오후 4시46분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해킹 사실을 신고하면서 24시간 이내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SK텔레콤의 지난해 정보보호 투자액은 600억 원으로, KT(1218억 원)와 LG유플러스(632억 원)보다 현저하게 낮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은 "KT와 LG유플러스의 연간 영업이익을 더해도 SK텔레콤에 못 미치는데 투자가 부실했던 점이 사고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의장인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 EC룸에서 열린 2025 APEC CEO 서밋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SK텔레콤, 위약금 면제 결정 왜 미루나

SK텔레콤 해킹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통신 인프라에 대한 신뢰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지난 2월 기준 휴대폰 회선 2497만여 개를 보유하면서 시장의 43.7%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KT의 29.9%나 LG유플러스의 26.3%보다 높은 수치로, 시장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해킹 사태로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다른 통신사로 옮겨간 가입자는 23만6901명에 달했다. 이 중 KT로 옮긴 가입자는 9만5953명, LG유플러스로 이동한 가입자는 8만6005명, 알뜰폰으로 옮긴 가입자는 5만5043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해킹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달 22일 이후 열흘 만에 번호 이동자가 급증했다. 이는 심 스와핑 같은 2차 피해 우려가 확산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SK텔레콤이 위약금 면제 결정을 미루는 진짜 이유는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가입자의 5%가 이탈할 경우 최대 3450억원, 10%로 확대될 경우 최대 6900억원까지 손실이 예상되며, 이탈률이 25%에 이를 경우 잠재적 수익 손실은 1조725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위약금이 면제된다면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네이버에 개설된 'SK텔레콤 개인정보유출 집단소송 카페'에는 7만4000명이 가입한 상태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오는 8일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을 다루는 청문회를 별도로 개최하기로 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는 SK텔레콤의 책임 회피가 계속될 경우 더 큰 정치적, 사회적 압력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최 회장은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사유서에서 "SK텔레콤의 전산망 해킹 사고로 인해 국회와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저와 SK텔레콤 전 임직원은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추가 피해 방지와 사고 수습을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알파경제 이준현 기자(wtcloud83@alpha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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