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식 기자
ntaro@alphabiz.co.kr | 2025-07-21 08:00:19
[알파경제=김교식 기자] 21일부터 신청이 시작되는 13조9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둘러싸고 정부와 카드업계 간 수수료 갈등이 논란이다.
행정안전부가 카드사들에게 소비쿠폰 사용 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청했으나 업계가 '역마진' 우려를 이유로 거부하면서, 경기 부양책이 시행 전부터 삐걱거리는 모양새가 됐다.
◇ 13조 규모 소비쿠폰, 수수료 갈등으로 출발부터 삐걱
정부가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전 국민 대상 1인당 최소 15만원에서 최대 55만원까지 지급되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다.
1차 지급은 7월 21일부터 9월 12일까지, 2차 지급은 9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되며 11월 30일까지 사용해야 한다.
소비쿠폰은 신용·체크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선불카드 중 선택할 수 있지만, 편의성을 고려할 때 상당수 국민이 기존 보유 카드를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 당시 약 70%가 카드를 통해 지급받은 전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사용처가 연 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가맹점으로 제한되면서 수수료 부담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행안부는 최근 여러 차례 금융위원회를 통해 카드사들에게 소비쿠폰 사용 시 가맹점 수수료를 기존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0.40~1.45%)에서 체크카드 우대수수료율(0.15~1.15%) 수준으로 한시 인하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측은 "소비쿠폰으로 카드 결제액이 증가해 카드사가 이익을 볼 것"이라며 "상생금융 차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소상공인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13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카드 결제망을 통해 유통되면서 카드사들이 얻는 이익을 소상공인과 나누자는 취지였다.
◇ "역마진 불가피" vs "상생 차원 협조"
카드업계는 정부의 요구에 대해 반발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구조적 '역마진' 발생 가능성이었다. 소비쿠폰 사용처로 지정된 연 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들은 이미 정부가 법으로 정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어, 카드사 입장에서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현재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40%, 체크카드는 0.15%에 불과하다.
여기에 VAN사 수수료(건당 90~100원), 전표 처리비용(60원) 등 운영비용을 고려하면 소액 결제 시에는 손실이 불가피한 구조라는 것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30만원을 결제할 경우 15만원 이하 수수료와 15만원 초과 수수료를 나누어 적용하는 별도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데, 짧은 시간 내 구현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구축 비용뿐만 아니라 서버 증설, 콜센터 운영, 가맹점 대금 선지급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 등 부가적 부담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2020년 긴급재난지원금 당시 카드사들이 약 8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경험이 이번 거부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시에도 인프라 구축 및 운영 비용을 자체 부담하면서 업계 전체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여신금융협회는 업계의 어려움을 정부에 설명하기 위해 행안부와의 직접 면담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나섰다.
◇ 카드업계 "본업 경쟁력 상실" 호소
카드업계의 강력한 반발 배경에는 지난 13년간 지속된 구조적 수익성 악화가 자리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8개 전업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2015년 10조7000억원에서 2023년 8조3000억원으로 22.5% 감소했다.
이로 인해 카드사들은 비용 절감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소비자 혜택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수수료 인하 협상은 지난 12일 최종 무산됐다.
대신 행안부, 금융위원회, 카드사들은 14일 민생쿠폰 집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수수료 인하에는 합의하지 못했지만, 쿠폰 지급과 소비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상호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인하 대신 소비자 및 소상공인 대상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통해 소비 진작 효과를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신금융협회는 총 당첨금 25억원 규모의 소비쿠폰 이벤트를 모든 카드사가 공동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MOU 체결은 근본적인 갈등 해결이라기보다는 당면한 사업 추진을 위한 임시방편적 성격이 강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카드사별로 요율이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수수료를 얼마나 인하할지 정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다"며 "다만 민생쿠폰이 정상적으로 지급·사용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소상공인 지원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카드업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 알파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