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기자
ababe1978@alphabiz.co.kr | 2025-11-12 08:28:35
[알파경제=김지현 기자] NH농협은행이 2026년 1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노조와 직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강태영 행장의 독단적 추진으로 조합원 74%가 반대하는 가운데, 최근 5년간 800억원을 넘는 금융사고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뇌물수수 의혹까지 겹치며 농협은행의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내년 1월 1일자로 중앙본부 사업부서 63곳 가운데 32곳의 업무를 변경하고 16개 조직을 폐지하거나 격하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 협의 없는 '핵폭탄급' 개편안…노조 "독단과 불통"
이번 조직개편은 2012년 농협 신경분리 이후 최대 규모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도권 심사센터 3곳은 모두 폐지돼 여신심사부로 일원화되고, 경남지역 진주·김해 여신관리단은 경남 여신관리단으로 통합된다.
IT부문은 조직 절반가량이 농협카드, 디지털부문, 신설 AI데이터부문 등으로 이관되는 등 변화 폭이 크다. 일반계약직의 경우 '기간 만료 시 별도 소요인력 및 채용 합의 불필요'라는 문구가 추가돼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된다.
농협은행은 유사·중복 업무 통합, 디지털 플랫폼 중심 조직 재편, 기업금융 활성화 등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는 성명을 내고 "조직개편은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와 합의해야 하는 사안인데, 은행 측은 공청회 하루 전날인 지난달 29일 오후에서야 통보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노조가 11월 초 본점과 IT부문 조합원 25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 1311명 중 74%인 966명이 조직개편안에 반대했다. 찬성은 19%인 254명에 불과했다.
반대 사유를 보면 부서 간 협의 부족 및 요구사항 미반영이 32%로 가장 많았고,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무리한 개편 28%, 개편안 준비 부족 20% 등이 뒤를 이었다.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개편안이 강 행장의 경영 방향은 물론 정부 정책 기조와도 어긋나는 '엉터리 자가당착'이라고 맹비난했다.
강 행장은 외환사업과 기업여신을 주력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개편안에는 '외환지원센터', '글로벌사업부문', '기업여신심사센터 3곳'이 모두 폐지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주문하고 있음에도 '생산적금융의 대표부서인 기술금융단'을 없애기로 한 점도 모순으로 지적됐다.
특히 노조는 "조직개편 담당 부서장(종합기획부장)은 2년 전 영업채널전략부 신설을 주도했던 인물"이라며 "이제 와서 그 부서를 스스로 폐지하겠다는 것은 일관성 없는 엉터리 개편"이라고 비판했다.
IT부문에 대한 개편안은 "해체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IT부문을 4개 부문으로 쪼개고 절반의 부서를 서대문 본점의 각 사업부문으로 옮기려 하면서 현장에서는 "서대문 이전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조는 "의왕의 IT부서들이 보고와 결재를 위해 서대문으로 매번 오간다면 그 비효율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전산장애 대응 등 IT부서 간 협업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금융사고 제로화' 공약은 어디로
강태영 행장이 올해 초 취임 당시 내걸었던 '금융사고 제로화' 선언은 공염불이 됐다.
지난달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올해 8월까지 275억원 규모 금융사고 8건이 발생했다. 최근 5년여간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38건, 피해액은 800억원을 넘어섰다.
강 행장은 취임과 동시에 준법감시 인력을 122명으로 확대하고 내부통제 팀을 10개로 늘리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상시준법시스템을 가동하고 15개 과제를 선정해 대출시스템 프로세스를 개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부적정한 여신심사, 임대차계약서 확인 소홀로 인한 부동산 사기대출, 이중매매계약서에 의한 사기대출 취급, 횡령·배임 등이 반복됐다.
농협은행의 위기는 조직개편과 금융사고를 넘어 경영진 비리 의혹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해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전후해 농협 계열사와 거래 관계에 있는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1억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 회장은 "이유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 국민과 206만 조합원, 12만 임직원, 1100명의 조합장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며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해 명백히 밝히겠다"고 답했다.
노조 설문조사에서 강 행장의 업무 수행에 대해 '잘 못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2%인 813명에 달했다.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8%에 그쳤다.
노조 관계자는 "특히 일반계약직 폐지 방침은 노조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사안인데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중장기 안목 없이 졸속으로 조직을 뜯어고치는 것은 구성원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 노조 "강력 투쟁" 예고
노조는 4일 개최한 39-2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2026년 은행조직개편안 철회를 지부임단협의 공식 요구사항으로 의결해 사측에 전달했다.
조합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강력한 투쟁수단도 마련한 상태다.
전국 지역위원장들은 6년 만에 한 명도 빠짐없이 조직개편안 반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0일에는 지부위원장이 은행장을 면담해 조직개편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강태영 은행장처럼 독선과 사심과 불통의 경영진이 정신 차리도록 강력히 투쟁하겠다"며 "2025년 임단투와 병행하고 있는 대 경영진 투쟁을 반드시 승리하여 경영진 리스크를 일거에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은행 측은 "디지털 전환과 효율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반발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조직개편 자체보다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과정이 문제"라며 "금융사고가 계속되고 경영진 비리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내부 신뢰가 무너지면 은행 경영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강태영 행장은 취임 당시 "고객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품격 있는 금융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사고 제로화 실패, 독단적 조직개편, 경영진 비리 의혹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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