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1.3조 쓰고 주주에게 3.6조 청구서…한화에어로, '역대급 유증' 금감원도 등 돌리나

주주 분노 부른 '역대급' 유상증자
"자금 조달 긍정적" 금감원, 일주일만에 입장 바꿔
'제2의 두산' 될까

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3-31 08:19:02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브리핑룸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우리금융과 홈플러스, 상법개정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유상증자의 당위성, 주주소통 절차, 자금사용 목적 등에서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 기재가 미흡하다"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한화에어로가 지난해 두산그룹처럼 유상증자를 철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3월 25일 경기 성남시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5년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주주 분노 부른 '역대급' 유상증자

한화에어로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유상증자 규모는 시가총액의 13.05%에 달하는 595만5000주다.

한화에어로는 증자 목적에 대해 "해외 방산 투자에 1조6000억원, 국내 방산사업에 9000억원, 해외 조선업 거점 확보에 8000억원, 무인기용 엔진 개발에 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2035년까지 매출 70조원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은 차가웠다. 유상증자 발표 당일 한화에어로 주가는 75만6000원에서 66만원대로 떨어졌고, 주주들의 반발은 거셌다.

손재일 한화에어로 대표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차입을 통한 투자는 부채 비율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문제가 있어 유상증자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은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한화에어로가 지난해 11조원이 넘는 매출에 1조7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둔 점, 2조9677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유상증자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선 "미래 가치를 보고 70만원에 들어왔는데 어떡하나", "유상증자를 하고 주가 오른 기업을 본 적이 없는데 그냥 나가야 하나" 같은 하소연이 이어졌다.
 

김동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 (사진=한화)


◇ 한화오션 지분 매입후 주주에 손 벌려

더욱 논란이 된 점은 유상증자 발표 직전인 지난 13일 한화에어로가 1조3000억원을 들여 한화오션 지분 7.3%를 사들인 사실이다.

매각자는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 등 김동관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계열사들이었다.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말 1조375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는데, 한화오션 지분을 매입하는 데 대부분을 썼다.

게다가 한화오션 지분 인수 당시 "추가 자본 조달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던 터라 주주들의 배신감은 더 컸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패밀리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 계열사로부터 한화오션 지분을 사 오는 데 1조3000억원을 지출한 지 일주일 만에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양새는 일반주주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화그룹의 경영 승계 작업과 연관되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한화그룹은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조선·에너지 부문을,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부문을,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유통·서비스 부문을 맡는 식으로 경영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이다.

IPO를 준비 중인 한화에너지는 한화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이 회사가 향후 ㈜한화 합병을 통해 지주사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데, 이때 한화에너지의 기업가치가 ㈜한화보다 높아야 삼형제의 ㈜한화 지분율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 "자금 조달 긍정적" 금감원, 일주일만에 입장 바꿔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었다. 유상증자 당위성, 주주소통 절차, 자금사용 목적 등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20일 한화에어로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도 "K방산의 선도적 지위 구축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나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주들의 거센 반발과 주가 급락 속에 일주일 만에 입장을 바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금감원의 입장 선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유상증자 의사결정 과정도 논란이다. 한화에어로는 사외이사들에게 1시간 설명 후 2시간의 이사회에서 3조6000억원 유상증자를 결정했으며, 이사회 구성원 7명 중 절반 이상이 화상으로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한화에어로는 해외 법인 투자와 관련해 "신속한 환경 변화 대처를 위해 당사는 현지 진출 전략 수립, 해외 생산거점 확보, 해외 파트너사와 JV(합작법인) 설립 등을 포함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만 공시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삼성증권 한영수·정소연 연구원은 "구체적인 지분투자 대상과 예상 효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며 "지분투자 대상 관련 추가 정보 공개까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K9 자주포.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 '제2의 두산' 될까

금감원의 정정 요구로 한화에어로 유상증자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한화에어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3개월 내 정정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지난해 6차례에 걸친 금감원의 정정 요구 끝에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안을 철회한 두산그룹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국ESG연구소(KRESG)가 펴낸 '2025년 정기주주총회 프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은 8개 상장사의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대상으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고, 이 중 5개 사는 유상증자를 철회하거나 무기한 연기한 바 있다.

이번 사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익 보호에 관한 논의를 더욱 촉발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향후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기업 의사결정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고 납득 가능하더라도 대규모의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라며 "투자계획이 오는 2030년까지 5년이라는 기간을 감안했을 때 향후 유입될 현금에 더해 회사채 발행도 적정 규모로 병행했다면 유증 규모를 줄일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지적했다.

위기 국면에 한화그룹은 김동관 부회장의 30억원 규모 한화에어로 주식 매수 계획과 한화의 유상증자 100% 참여 결정으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주주들의 불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번 유상증자 논란은 대규모 자금조달을 계획하는 기업들에게 주주와의 충분한 소통과 투명한 정보 공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 알파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