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7-11 08:26:45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국내 영화관 업계 2·3위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합병이 단순한 '생존 연합'을 넘어 사실상의 경영권 매각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양사가 UBS를 통해 추진 중인 최대 4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유치가 현재 기업가치를 고려할 때 상당한 지분 희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0일 지난 6월 11일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 간 합병 사전협의를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대기업 M&A 사전협의로는 첫 사례다.
◇ 200억원 적자에 떠밀린 합병
양사의 올해 1분기 실적은 합병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음을 보여준다.
롯데컬처웍스는 매출 8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9% 급감했고, 영업손실은 104억원에 달했다.
메가박스는 더욱 참혹하다. 매출이 47.4% 폭락한 449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 103억원을 기록해 양사 합계 207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업계 1위 CJ CGV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CGV는 같은 기간 매출 5336억원으로 36% 증가했고, 32억원의 영업이익까지 기록했다. 4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다.
롯데의 실패는 영화산업에 대한 오랜 '양가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2014년 배급사 점유율 2위였지만, 2015년 참혹한 실패로 7위까지 추락했다. 당시 8편의 한국 영화를 배급했지만 전체 관객이 500만명에 불과해, 손익분기점(1920만명)의 4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총제작비 120억원을 투입한 '협녀', '칼의 기억'은 43만명밖에 동원하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롯데가 CJ보다 4년 늦게 영화산업에 진입(1999년 vs 1995년)했으면서도, 2018년에야 독립법인으로 분사할 정도로 그룹 내에서 부차적 사업으로 취급해왔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가 대기업 그룹의 소규모 파트로서 큰 리스크 없이 이미지 차원에서 운영해온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전체 영화 시장 침체도 합병을 부채질했다.
작년 극장 매출은 1조1945억원으로 전년 대비 5.3% 감소했고, 이는 2019년 대비 65% 수준에 불과하다. 관객 1인당 연평균 관람 횟수는 2019년 4.37회에서 2.4회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 4000억 투자 유치…사실상 '경영권 매각' 시나리오?
양사는 글로벌 투자은행 UBS를 주관사로 선정해 최대 4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는 단순한 운영자금 확보를 넘어서는 규모다.
롯데컬처웍스의 2024년 매출이 4517억원, 메가박스중앙이 3533억원임을 고려하면, 4000억원 투자는 상당한 지분 변동을 의미한다.
더욱 이례적인 것은 양사가 기업 규모 차이에도 불구하고 1대1 합병 비율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통상 M&A에서는 기업 규모와 수익성을 고려해 치열한 지분 협상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합병에서 양사가 손쉽게 1대1 비율에 합의한 것은 미래 성장성보다는 현재의 손실 분담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시사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성장 산업이라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있었을 텐데, 오히려 부담을 나눠 갖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손쉬운 1대1 합의는 오히려 양 그룹 모두 영화 사업에서 부담을 덜고 싶어한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 '배급 빅2' 탄생과 경쟁제한
공정위의 관심사는 극장 시장 점유율이 아니다. 합병 후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되면서 투자·배급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가 주요 쟁점이다.
현재 국내 주요 배급사 '빅5'(CJ ENM·롯데엔터·플러스엠·쇼박스·NEW) 중 롯데엔터와 플러스엠이 합병하면 CJ ENM과 맞먹는 규모의 새로운 배급 강자가 탄생한다.
플러스엠은 최근 '서울의 봄', '범죄도시' 시리즈 등을 연달아 성공시킨 신흥 강자다.
문제는 합병 법인이 압도적인 스크린 수(1682개)를 무기로 자사 투자·배급 작품에 상영 기회를 몰아줄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독립 배급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영화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합병의 파급효과를 고려해 사전협의 단계에서부터 소비자 및 회원사에 미치는 영향, 경쟁제한 우려 등을 면밀하게 심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사가 영화관을 직영점뿐만 아니라 위탁 등을 통한 회원사 구조로 운영하고 있어, 합병 후 회원사 권익 보호 방안도 주요 검토 사항이다.
◇ 합병으로도 풀리지 않는 근본 문제…'CJ 따라잡기'의 한계
합병을 통해 스크린 수에서는 CGV를 넘어서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확보는 여전히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한 규모 확대로는 관객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구식 상영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업계 2·3위인 두 사업자는 이번 합병으로 1600개 넘는 스크린을 확보하지만, 그곳 대부분은 사람들이 더 이상 찾기 원치 않는 구식 상영관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수익성 개선이 주된 목표인 합병에서 상영관 리뉴얼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 파이프라인의 고갈이다. 내년 상영 예정인 한국 상업영화가 20편 내외로, 2010년대 40-45편의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극장에 상영할 영화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합병만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롯데-메가박스 합병은 침체된 영화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카드지만, 합병 자체만으로는 구조적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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