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식 기자
ntaro@alphabiz.co.kr | 2025-04-02 20:33:32
[알파경제=김교식 기자]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직을 걸고' 반대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직후 사의를 표명했으나, 경제 수장들의 만류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중대 국면을 앞두고 최종 거취는 4일 이후 결정될 전망이다.
◇ "직 걸겠다" 이복현, 한덕수 권한대행 거부권 행사에 사의 표명
이 원장은 지난달 13일 상법 개정안에 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직을 걸고 막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국경제인협회 토론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주주가치 제고 논의를 원점으로 후퇴시키면 직(職)을 걸고 막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 원장의 강경 발언은 상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균형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비롯됐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전국 100만여개 모든 법인을 대상으로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정부가 추진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2600여개 상장 법인에만 적용된다.
이 원장은 두 법안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 "주주 권리 보호가 이원화되어 기업의 준법 비용이 증가한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이런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4월 1일 국무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한 권한대행은 "상장회사 중심으로 일반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행이 정착되고 관련 판례도 축적돼 가면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현실에 더욱 적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기업·중소기업 경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는 점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들었다.
◇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F4 회의 복귀
거부권 행사 직후, 이 원장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 원장은 "금융위 설치법상 금감원장에 대한 제청권자가 금융위원장"이라며 "최근 위원장께 연락을 드려 제 입장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원장의 사의 표명은 경제팀 수장들의 즉각적인 만류에 부딪혔다.
이 원장은 "금융위원장에게 말씀을 드리니 최상목 부총리님과 이창용 한은 총재께서도 전화를 주셨다"며 "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운데 이렇게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면서 말리셨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 수장들은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와 환율 문제 등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오늘 밤 미국 상호관세 발표와 이에 따른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며 "안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대응을 논의한 후 (거취에 대해) 얘기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F4 회의(금융을 책임지는 4명 수장이 하는 회의)에 불참하며 상법 개정안의 논의 방향에 불만을 표했던 이 원장은 3일 예정된 F4 회의에는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금융시장 안정성과 현안 대응이라는 공적 책임을 우선시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 원장은 "미국의 상호 관세 이슈가 발표 한 번에 끝나는 건 아니고, 홈플러스 사태 등 4월은 처리해야 할 현안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홈플러스 유통 현안에 대해 "검사·조사권을 행사해야 하고 행정적 단계에서 조정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조정해야 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 4일 尹 탄핵 심판 선고…이복현 원장 거취 분수령
이 원장의 거취에 관한 최종 결정은 4일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이 원장은 "4일 대통령이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이런 걸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거취 문제를) 말씀드리는 게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윤석열 사단'의 막내 검사로 알려졌다. 그간 12·3 비상계엄 후 대통령 관련 언급을 삼갔으나, 이번 인터뷰에서는 '대통령'이란 단어를 총 8번이나 사용했다.
특히 그는 "주주 가치 보호나 자본시장 선진화는 대통령께서 직접 추진하신 중요 정책이고, 대통령이 계셨으면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 원장은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총리께서도 헌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 질서 존중 차원에서는 그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작년 하반기까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도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무부와 저희의 입장이었다"며 "주주 보호 원칙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조금 다른 모양의 법이 통과된다고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의 임기는 2025년 6월 5일까지로 약 2개월 남은 상황이다.
그는 "계획대로라면 6월 5일 마지막 근무일 밤에 아들과 발리 길리섬을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놨다"고 언급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공직자로서 국민들 앞에 약속을 드렸고 본의 아니게 권한대행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드린 것도 맞아서 누군가가 책임지는 게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4일 헌재 선고 결과를 지켜본 후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22대 총선 때 출마 권유가 꽤 있었지만 가족들과 상의 후 안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었다"며 정치 참여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는 "가족이 선뜻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25년 넘게 공직 생활을 했으니 할 수 있다면 민간에서 조금 더 시야를 넓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이 원장의 일련의 행보에 대해서는 정치적 셈법에 따른 행동이라는 해석도 정·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향후 시장 불확실성과 산적한 현안을 고려할 때 이 원장이 남은 임기 2개월을 채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이 원장의 거취는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 결과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복귀 여부가 확정된 이후에야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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