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의 손바닥 칼럼] ①트럼프의 ‘리야드 연설’의 파격

김교식 기자

ntaro@alphabiz.co.kr | 2025-06-20 17:47:22

(사진=알파경제)

 

[정리=김교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만큼 극과 극을 달리하는 사람도 없을듯싶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미국은 물론 세계,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트럼프가 지난 5월 1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행한 역사적인 ‘리야드연설’은 중동 위기가 도래한 현재까지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다. 두 차례에 걸쳐 이의 함의를 밝히고자 한다. <2025년 6월 20일자 [최요한의 티키타카 토크] ② 리야드에서 한반도까지 참고기사>


트럼프의 ‘리야드 연설’의 파격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미국 투자포럼’이라는 자리에서 연설했다는 것 자체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당사자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것, 그리고 연설의 기조가 그동안 미국이 아랍에 배 놔라, 감 놔라, 개입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면? 그리고 앞으로 아랍의 운명은 아랍 인민들의 의지에 달렸다고 강조한다면? 미국이 아랍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이는 사실 굉장한 충격이자 파격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직접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위대한 변화는 서방의 개입주의자들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 강의한 결과가 아닙니다. 리야드와 아부다비의 찬란한 기적은 소위 ‘네이션 빌더(국가건설업자)’나 ‘네오콘’, ‘자유주의 비영리단체’들이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카불과 바그다드 등에서 수조 달러를 쏟아붓고도 실패했습니다. 현대 아랍의 탄생은 바로 이 지역의 국민들이 주도한 것입니다. 각자의 주권 국가를 발전시키고, 고유한 비전을 추구하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모두 해제할 것입니다. 시리아에 발전의 기회를 주기 위해 제재 중단을 명령할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과 시리아 간 정상적 관계를 복구하기 위한 첫 조치를 이미 취했습니다.”

“이란과 관련해,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란과 협상하길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이 올리브 가지(평화의 제안)를 거부하고 이웃 국가를 계속 공격한다면, 우리는 최대의 압박을 가하고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로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제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이란이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아랍의 미래를 아랍 국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일방적 개입이나 서구의 가치 강요가 아닌, 각국의 주권과 선택을 존중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14일, 트럼프는 보란 듯이 행동했다. 한때 현상금 140억 원을 내걸었던 아메르 알 샤라 시리아 임시 대통령과 깜짝 회동했다. 10여 년을 이어온 적대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시리아는 자국에 ‘트럼프 타워’ 건설을 제안했다고 한다.  

 

(사진=연합뉴스)


아랍 각국의 반응

트럼프가 연설했던 리야드의 킹 압둘라지즈 국제컨퍼런스센터는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고 한다. 일부 참석자는 트럼프가 마치 ‘록스타’ 같았다고도 했다. "미국은 더 이상 아랍 국가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 며 아랍의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아랍 국가 주요 인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했다.

리야드의 연설 내용은 반미주의자들이 수두룩한 아랍 전역에서 화제가 되어 SNS를 뜨겁게 달궜다. 연설 내용이 아랍 현지의 SNS로 빠르게 확산이 되어 미국의 오랜 개입 정책에 반감을 품던 아랍 주민들과 지도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반면 망명 중인 사우디 야당 인사 등 일부 인사들은 트럼프의 비개입 선언이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같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홍보용 쇼’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지만, 전반적으로 현장에서는 리야드 메시지에 대한 환호와 기대감이 압도적으로 컸다고 한다. 이런 반응 덕분인지 트럼프 연설 후 사우디는 미국과 6,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역시 장사꾼 트럼프는 연설 한 번으로 살뜰한 이익을 챙겼다.

문제는 네오콘과 이스라엘

네오콘은 ‘신보수주의’로 불리면서 미국적 가치가 최선이며 (이에 反 한다면)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호전적이며 공격적인 태도를 가진 그룹이다. 이들은 미국의 군산복합 산업체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당연히 트럼프 연설의 핵심인 아랍 문제에 대한 미국의 비개입과 각국의 주권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내용과는 정반대 입장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왔던 네오콘의 대외정책 노선과 충돌되는 상황이기에, 네오콘은 트럼프의 리야드연설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솔직히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네오콘’이 거론되면서 비판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걸 트럼프는 수행했다.

네오콘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입장은 이스라엘이다. 13일 리야드의 연설을 위한 아랍 순방에서 이스라엘은 트럼프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 미국은 예멘 후티 반군과의 휴전 협상을 하면서,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사전 조율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올 1월,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 시기만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트럼프를 가장 든든한 우호 세력으로 믿었다. 하지만 리야드연설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실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파트너십이 사우디로 이동하는 분위기, 이란과의 대화 제스처 등에서 점점 더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네타냐후는 눈이 돌았던 것 같다. 이스라엘군은 14일 오후 늦게 가자북부 가자시티에 새로운 대피 명령을 내리고 공습을 단행했다. 폭격당한 자발리아 주택가를 중심으로 어린이 등 최소 8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네오콘은 이스라엘의 이런 ‘몽니’를 보고 그냥 넘어갔을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은 트럼프의 비판을 받은 네오콘과 미국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한 이스라엘의 암묵적 교감이 있지 않을까? 트럼프의 리야드연설을 물 먹이면서 자기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음흉한 흉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진=연합뉴스)

트럼프는 왜?

트럼프가 리야드에서 파격적인 연설과 시리아 제재 해제 등의 조치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가 갑자기 착해졌나? 인류 평화를 위해 인생 말년에 뭔가 지구촌 평화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그건 아닐 것이다.

아랍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지역이다. 실제 중국은 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 에너지 거래 확대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랍에서 미국이 손을 떼겠다? 이상하지 않은가?

장사꾼 트럼프는 전통적인 미국의 접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아랍에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는 미국 내에서 분명히 존재한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를 인식하며 경제·외교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단순히 “손을 뗀다”는 선언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 전략은 중국에 대한 강경 견제와 경제적 디커플링 추진이 핵심이다. 이는 아랍에서도 변치 않는다. 미국은 아랍에서 물리적·군사적 개입을 줄이더라도, 중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하고, 경제적·외교적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래서 사우디와 6000억 달러라는 전무후무한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언이다. 정치는 정말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모든 사안을 철저히 계획하더라도 트럼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란에 올리브 가지(평화의 제안)를 흔들어도 이란은 엇나갔다. 게다가 이란이 트럼프에게 약한 고리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이스라엘은 이미 준비된 드론과 미사일로 이란을 폭격했다. 어쩌면 이번 이란에 대한 공격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자신을 ‘왕따’시키고 사우디에 힘을 실어주려고 했던 트럼프에 대한 공격일 수도 있고, 리야드연설로 아랍 지역의 정치 지형을 바꾸려던 트럼프의 구상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이 생물은 어떻게 살아 나갈까? 또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 알파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