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픈 환자 벼랑으로 모는 실손보험사의 적반하장

김종효 선임기자

kei1000@alphabiz.co.kr | 2026-05-26 16:47:33

(사진=이현조 손해사정사 겸 하늘손해사정법인 대표 제공)

 

[알파경제=이현조 하늘손해사정법인 대표] ​최근 경제지 지면을 들여다보면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앞다퉈 늘어놓는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가입자들이 국민건강보험의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과 민간 실손의료보험금을 겹쳐서 타 가는 바람에 해마다 수천억 원의 보험금이 줄줄 샌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얌체 가입자들 탓에 선량한 대다수가 덩달아 보험료 폭탄을 맞게 생겼다면서 중복 지급을 막고 사후정산을 합법화할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국회를 닦달한다. 겉만 보면 억울한 사기업이 제도의 빈틈 탓에 막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모양새다.

​하지만 화려한 핑계와 통계 뒤에 숨겨진 보상 현장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참담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거대 자본이 자기 배를 불리려고 병마와 싸우는 환자를 잠재적 사기꾼 취급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의 공공복지에 기생해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 ​공적 부조 갉아먹는 거대 자본의 얄팍한 탐욕

​우선 본인부담상한제가 무엇인지부터 따져보자. 중증 질환으로 막대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서민이 거리에 나앉지 않도록 국가가 깔아둔 최후의 사회 안전망이다.

소득 수준에 비추어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오면 그 초과분을 건보 재정으로 환자에게 돌려주는 공적 부조다. 그런데 영리를 좇는 민간 보험사들이 국가가 아픈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려 내어준 복지 혜택을 핑계로 마땅히 줘야 할 보험금을 깎겠다고 나선 셈이다.

공공복지와 사적 계약의 경계를 허물고 국가의 부조를 제 손해율을 낮추는 쌈짓돈으로 쓰겠다는 오만방자한 발상이다.

​더욱 끔찍한 일은 법안 통과를 애타게 기다린다며 언론에 눈물짓는 보험사들이 정작 현장에서는 이미 온갖 불법적 꼼수로 환자들의 피를 말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과거 실손보험 약관에는 환급금과 보험금을 겹쳐서 받으면 안 된다는 조항 자체가 없었다. 보험사 스스로 상품을 엉터리로 설계해 놓고 적자가 쌓이자 이득금지 원칙을 내세워 슬그머니 약관을 고쳤다.

바뀐 약관을 새 가입자에게 적용하는 일이야 기업의 논리라 치자. 그래도 문제는 환수 규정이 없던 시절에 가입한 옛 고객에게까지 바뀐 잣대를 함부로 들이밀며 소급 적용의 칼날을 휘두른다는 점이다.

 

(사진=연합뉴스)


◇ 치료비 볼모로 잡고 약관마저 짓밟는 무소불위 갑질

​환자가 억울해하며 돈을 내놓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험사들의 수법은 폭력 조직의 수금 방식을 방불케 한다.

암 투병이나 장기 재활로 당장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입원비를 청구하면 “예전에 건보공단에서 환급받은 돈을 토해내기 전에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버틴다. 아픈 환자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당장의 치료비를 볼모로 잡고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환급액은 환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극히 민감한 정보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직업을 캐물어 마음대로 소득을 넘겨짚은 뒤, 환자가 아직 구경조차 못한 ‘받을 예정인 환급금’을 제멋대로 셈하여 그만큼을 빼고 보험금을 툭 던져준다.

억울하면 직접 소득분위 증명서를 떼어 오라며 윽박지르고 아예 실손보험과 전혀 무관한 다른 보험금 항목에서 예상 환급액을 깎아버리는 기막힌 상계 처리 사적 제재도 서슴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보험사들은 뒤에서는 약관마저 짓밟으며 벼룩의 간을 빼먹듯 제 잇속을 다 챙기면서, 앞에서는 언론에 “법에 구멍이 뚫려 억울하게 수천억 원을 뜯긴다”며 약자 흉내를 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진정으로 구멍이 뚫린 곳은 보험사의 금고가 아니라 아픈 국민을 보듬어야 할 의료복지의 근간이다. 약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멋대로 약관을 뒤집고 환자의 몫을 착취하는 대형 보험사들이야말로 법치를 우롱하고 있다.

​국회와 금융 당국은 거대 자본의 뻔뻔한 눈물 쇼에 속아 넘어가 청부 입법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병상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의 절박함을 무기로 불법적인 소급 적용과 임의 삭감을 자행하는 보험사의 파렴치한 영업 행태부터 샅샅이 파헤치고 엄단하는 것이다. 국가 복지는 대기업의 곳간을 채워주려 마련한 전리품이 아니다.

 

*시론_이현조 손해사정사 겸 하늘손해사정법인 대표
- 하늘손해사정법인 대표손해사정사
- 저서 : 보험의 새로운 패러다임 빌드업

 

[ⓒ 알파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