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환율 장기화, 철강·정유·석유화학 등 원가 부담 가중 ‘심각’

철강업계, 美 고율 관세 부과에 수요 둔화까지 이중고
“정부, 수출 기업 환헤지 확대 요청, 기업들 일률적 대응 어려워”

김영택 기자

sitory0103@alphabiz.co.kr | 2025-12-19 16:32:16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김영택 기자] 지속되는 고환율 현상이 국내 산업계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원가 압박이 본격화되면서 기업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80원대를 넘나들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자, 과거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원자재 및 부품, 에너지 비용의 달러 결제 부담이 기업 수익성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으로 부상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매출 증대 효과보다 원가 상승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입 원자재 가격은 환율 상승 시 즉각적으로 원가에 반영되지만, 납품 단가 조정은 쉽지 않아 비용 부담이 기업 내부에 누적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사진=연합뉴스)


◇ 철강업계, 美 고율 관세 부과에 수요 둔화까지 이중고

철강업계는 고환율에 더해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글로벌 수요 둔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광석, 원료탄 등 핵심 원자재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제조원가 상승으로 직결되며,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발 공급 과잉, 내수 부진까지 겹쳐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유업계 역시 연간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달러로 도입하는 만큼, 환율 상승은 원유 도입비 증가로 이어진다.

정유사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원료를 매입하는 '내추럴 헤지' 전략으로 단기 충격을 일부 상쇄하고 있으나,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비용 관리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석유화학 업계 또한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데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제품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서 원가 부담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우기훈 코트라 전 부사장 겸 무역연구회장은 알파경제에 “업계에서는 환율 변동성 확대의 배경으로 미국의 관세 이슈, 보호무역 기조 강화, 기업들의 해외 투자 확대 흐름 등을 복합적으로 지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투자 증가로 인해 현지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기보다 보유하거나 재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화 요청은 기업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부, 수출 기업 환헤지 확대 요청, 기업들 일률적 대응 어려워”

최근 정부는 주요 수출 기업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환헤지 확대를 요청했으나, 기업들은 일률적인 대응에 어려움을 표하고 있다.

환헤지는 선물환 거래 등을 통해 향후 외화 거래의 환율을 미리 고정하는 전략으로, 기업의 선물환 매도 참여는 시장 달러 공급을 늘려 단기적인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고환율 국면에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환율이 지속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달러 보유 또는 해외 재투자 전략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 역시 단기간 내 환율 안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 달러 조달이 어려워지면 현물환율이 급등하지만, 최근은 달러를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달러가 오를 것 같아서' 발생하는 이슈"라며 "현물환율 상승 기대가 꺾이는 시점이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해외에서 원자재를 조달하는 업종은 중장기적인 원가 구조 점검과 환율 리스크 관리 전략 수립이 불가피해졌다.

산업연구원은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대기업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알파경제에 "고환율이 일시적이라면 환차손을 감내할 수 있지만,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 원가 구조 전반이 흔들린다"며 "가격 전가가 어려운 업종일수록 수익성 압박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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