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정부가 끌고 은행이 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김혜실 기자

kimhs211@alphabiz.co.kr | 2025-07-14 00:00:11

[알파경제=김혜실 기자] 한국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은행권을 중심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다수의 업체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출원하며 시장 진출 의사를표명하는 등 발빠르게 준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USDT, USDC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시장 수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이후 연계 산업이 발달한 것과 달리,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벌써부터 정부가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양상이라 시장 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사진=연합뉴스)

◇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시작...시장 개화 목전
대선 이후 스테이블코인 관련 공약 이행의 과정으로 법제화가 시작되었고, 6월 11일에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으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란 특정 통화에 가치가 페그되어 있는 디지털자산을 지칭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에 가치가 페그되어 있는 디지털자산을 의미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장점 중 일반 사용자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비용이 낮고 결제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 송금·결제는 기존 인프라를 상당 부분 우회 가능하여 비용이 낮으며 일부 블록체인에서는 송금 시 10원 이하의 비용이 발생한다. 
액수가 늘더라도 비용이 달라지지 않으며 결제, 인도, 정산 절차가 24시간 즉각 이뤄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른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과의 환전도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창용 "은행 중심 스테이블코인 발행"
스테이블 코인이 발행되면 실질적으로 통화발행과 같은 통화량 증대가 나타날 수 있어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줄곧 반대 입장을 취해 왔고, 최근에는 발행하더라도 은행권 발행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0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비(非)은행 기관에 허락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다수의 비은행 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면 여러 민간 화폐가 생기는 셈이 되고, 이 경우 가치가 다른 여러 화폐가 유통될 위험이 생기기 때문에 통화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어렵고 금융 시스템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법정 통화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규제와 감시가 필요한데, 만약 비은행 기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할 경우 은행과 같은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은행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고 하면 한은이 인허가권을 받으려고 하는 걸로 보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지만 은행권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가는 것이 좋은지, 비은행권까지 다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신중히 보면서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료: Rui Shang,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
자료: Rui Shang,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

◇ 금융권 상표권 출원 경쟁...정부 주도 시장의 명암 뚜렷
이에 은행들은 앞다퉈 상표권 출원이 나서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을 포함해 인터넷뱅크, 지방은행까지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출원하고 있다. 
또  NH투자증권이 증권업계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출원한 데 이어, 최근 신한투자증권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명칭들을 대거 출원했다. 이밖에 가상자산거래소, 핀테크 업체들도 앞다퉈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출원하며 시장 진출 의사를 내세우고 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 관련 은행과 비은행의 장점은 명확하나 아직 확정된 규제가 없어 이렇게 될 것이다 단정짓기는 이른 시점이나 통제력 확보가 우선시되는 한국의 정책 환경을 감안하면, 은행을 시작으로 비은행에 점진적 허가를 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원은 "스테이블 코인은 준비금 100%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은행의 대출여력 축소는 불가피 할 것으로 생각되며 발 빠른 기술 도입 및 빅테크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경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그러나 USDT, USDC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시장 수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이후 연계 산업이 발달한 것과 달리,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정부의 정책 주도와 규제 완화를 통해 추진되고 있으며, 실질적인 수요가 부재한 상황에서 필요성을 강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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