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트럼프, 반도체법 폐지 의지 재확인…삼성·SK 7조원 보조금 '안갯속'

"대만이 훔쳐갔고 한국도 일부 차지"
보조금 대신 관세로 압박
법안 폐지 현실화 가능성 불확실 전망도

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3-10 08:33:41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폐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기술을 "훔쳐갔다"는 충격적 발언을 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 "대만이 훔쳐갔고 한국도 일부 차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점차 반도체 사업을 잃었다. 이제 대부분이 대만에 있다. 대만이 우리에게서 훔쳐 갔다. 약간은 한국에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제 그건 전부 거의 독점적으로 대만에 있으며 약간은 한국에 있지만 대부분 대만에 있다"라며 한국을 명시적으로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대만을 비판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국을 공개석상에서 함께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훔쳐갔다'는 원색적 표현까지 동원하며 한국을 직접 겨냥한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4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지급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들은 우리의 돈을 가져가서 쓰지 않고 있다"며 반도체법을 "정말 끔찍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반도체법과 남은 것은 모두 없애야 한다"며 법안 폐기와 예산의 정부 부채 탕감 사용을 요구했다.

이런 발언은 대만 TSMC 웨이저자 회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애리조나에 총 1000억 달러(145조원) 투자계획을 밝힌 지 불과 나흘 만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에는 "이것은 미국 및 TSMC에 엄청난 일"이라고 평가했지만, 이후 대만과 한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입장을 바꿨다.
 

트럼프 무역 관세 정책. (사진=연합뉴스)


◇ 보조금 대신 관세로 압박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법 폐지 압박은 그의 무역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

그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관세를 활용해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에 10센트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관세 때문에 왔다"라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에) 중요한 것은 관세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높은 관세를 매기면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는 단순히 반도체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캐나다와의 무역 갈등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평균 4배나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반도체를 겨냥한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미국산 농산물을 제외하면 사실상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삼성·SK, 7조원 보조금 불투명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법 폐지 발언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그 대가로 수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기로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 달러(약 53조원)를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미 정부로부터 47억4500만 달러(약 6조87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6000억원)를 투자해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4억5000만 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문제는 두 기업 모두 아직 약속된 보조금을 받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반도체법이 폐지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해 현지 공장 건설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원자재비와 인건비가 급등해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보조금 지원이 없다면 미국 공장 건립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경우 파운드리 경쟁사인 대만의 TSMC가 최근 1000억 달러(145조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한 상황에서 공장 건설이 늦어지면 현지 빅테크 고객 확보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약 7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이 불확실해지면서 미국 내 투자 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연합뉴스)


◇ 법안 폐지 현실화 가능성 불확실 전망도

다만, 현실적으로 반도체법 폐지가 실현될 가능성은 불확실하다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법 폐지를 위해서는 상원의원 100명 중 60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민주당 47명 의원들의 반대가 거세고 보조금 혜택을 받을 주의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도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한 무역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파월 의장은 "특히 무역 정책이 어디로 가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며 "서두를 필요가 없다.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관세를 올리면 물가가 오르고 기업과 소비자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를 압박하기 위한 대외적인 발언일 뿐, 이미 약속한 보조금을 무산시키기엔 명분이 부족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볼 때 반도체법 폐지가 현실화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보조금 백지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알파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