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하 기자
kay33@alphabiz.co.kr | 2026-03-24 11:07:30
프리IPO로 자금유치한기업들 재무 부담 현실화
LS·SK에코플랜트·HD현대로보틱스 등 줄줄이 영향권
세부기준 2분기 확정…합병·계열분리 등 대안 불가피
[알파경제=김단하 기자] 정부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을 공식화하면서 자본시장 제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주주보호를 강화한 제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자회사 IPO를 통한 자금조달을 계획한 기업들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중복상장 원칙금지 공식화…자본시장 변화 신호탄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중복상장에 따른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 침해를 막기 위해 상장 심사를 '원칙금지·예외허용' 체계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분할뿐 아니라 종속회사 손자회사까지 포함해 실질 지배관계가 있으면 중복상장 심사대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대상으로 △상장 필요성 △주주보호 △경영 독립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다는 방침이다. 세부 기준은 2분기 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까지 드러난 개선 과제는 많다"며 "상장돼 있는데 일부 떼서 또 상품을 만드는 중복상장 문제"라고 직접 언급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 5200조원 중 중복상장 시총이 1000조원을 넘는다"며 "비율이 약 20%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규제든 법적이든 원천적으로 금지하면 밸류에이션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중복상장 금지의 순기능으로 지주회사 주가 할인 현상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중복상장 원칙금지 방안은 중복상장 문제의 본질이 주주보호와 자회사 경영·영업의 독립성에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었다"며 "쪼개기 상장뿐 아니라 인수·신설 자회사까지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심사 대상을 확대하고 상장 필요성, 주주소통, 일반주주 보호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원칙금지·예외허용' 기조는 기존과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해외 상장의 경우 거래소 심사만으로는 규율이 어려운 만큼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통해 범위를 확대·보완하려는 점도 정교하다"며 "모회사 이사회가 일반주주 관점에서 영향평가와 공시를 수행하도록 한 것은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중복상장 구조에 대한 부담이 현실화되며 상장 전략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LS그룹이다. LS는 자회사 LS에식스솔루션즈 상장을 통해 투자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소액주주 반발과 중복상장 논란이 이어졌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송아지 밴 암소를 샀는데 송아지 주인이 남이면 화가 나지 않느냐"고 중복상장 문제를 비판한 이후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결국 LS는 발언 이후 수일 만에 한국거래소에 청구한 예비심사를 철회했다.
에식스솔루션즈는 프리IPO 단계에서 2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약 1조4500억원을 인정받았다. 다만 2030년 8월까지 상장하지 못할 경우 연복리 5.95% 수익 보장 조건이 포함돼 있어 상장 지연 시 재무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이에 따라 자회사 IPO 외 대안적 자금조달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자회사 IPO 경로 막힌 대기업, 전략 수정 불가피
다른 대기업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계열사 수가 많고 물적분할 후 상장 사례가 많은 SK그룹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으로 SK에코플랜트가 이번 규제 영향을 직접 받을 수 있다.
SK에코플랜트는 SK㈜가 지분 63.17%를 보유한 비상장 자회사다. 2022년 프리IPO를 통해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면서 일정 기한 내 상장을 완료하는 조건의 주주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에는 상장 기한과 함께 단계적으로 수익을 보전해주는 조건이 포함돼 있어 상장이 지연될 경우 투자자에 대한 수익 보전 부담도 커지는 구조다. 당초 SK에코플랜트는 올해 7월까지 상장을 목표로 했지만, 상장 절차 지연시 투자금 회수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HD현대 역시 물적분할을 통해 설립한 자회사 상장을 추진해온 만큼, 이번 중복상장 규제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HD현대는 2020년 로봇사업부를 물적분할해 HD현대로보틱스를 설립했고 현재 지분 8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후 해당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왔는데, 이는 전형적인 중복상장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HD현대로보틱스는 기업가치 최대 8조원 수준이 거론되며 대형 IPO로 꼽혔지만, 규제 기조가 강화될 경우 상장 추진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단순히 자금조달 문제를 넘어 로봇사업을 지주사 체계 내에서 유지할지, 외부 자본을 어떻게 유치할지에 대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롯데지주 60.74%, 롯데홀딩스 20.11%, 호텔롯데 19.1% 등이 주요 주주로 있는 비상장사로, 송도 CDMO 시설 구축을 진행 중이다. 내년 가동 시점까지 수천억원대 추가 투자가 필요한 만큼 시장에서는 IPO 가능성을 꾸준히 거론해왔다. 다만 현재와 같은 규제 기조가 이어질 경우 그룹 차원의 추가 출자나 차입, 재무적 투자 유치 등 다른 조달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해외 상장도 예외 없다…합병 시나리오까지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나믹스처럼 해외 상장이 거론되는 사례도 이번 제도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자회사 중복상장 시 모회사 이사회에 주주 충실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해외 거래소 상장의 경우 거래소 심사로는 규율이 어려운 만큼, 이사회 책임을 통해 규제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해외 상장이라 하더라도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발생할 경우 이사회 판단이 직접적인 책임 이슈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화에너지는 지배구조 측면에서 다른 사례와 결이 다르다. 이 회사는 김동관 부회장 등 오너 3세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사지만, 지난해 말 기준 ㈜한화 지분 22.15%를 보유하며 사실상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 '3세→한화에너지→㈜한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형식상 지주회사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향후 상장 추진 시 중복상장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 방안으로는 ㈜한화와의 합병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회사 측은 "합병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고 있다. 다만 합병이 현실화될 경우 합병비율 산정을 둘러싼 주주 간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J는 CJ올리브영을 둘러싼 지배구조 개편이 핵심 변수다. 자회사 중복상장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올리브영 IPO 대신 CJ와의 합병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상법 개정에 따라 CJ 7.3%, 올리브영 22.6% 자사주가 1년 6개월 내 소각돼야 하는 점도 시기적으로 맞물린다. 증권가에서는 늦어도 2027년 상반기 내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합병이 곧바로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합병비율 산정 과정에서 올리브영 가치가 높게 평가될 경우 CJ 비지배주주 지분 희석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CJ 지분 13.4% 보유한 국민연금의 입장도 변수로 꼽힌다. 규제가 합병 명분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합병 과정의 공정성 논란은 별도의 리스크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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