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6-06-14 09:50:15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육군의 낡은 헬기를 바꾸겠다면서 시민의 혈수조 원을 쏟아부은 차세대 소형무장헬기(LAH) ‘미르온’이 뼈대부터 심각하게 곪아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헬기의 심장과도 같은 엔진 10대 가운데 8대꼴로 심한 부식이 일어났고 쩍쩍 갈라지는 균열마저 생겼다.
조립을 맡은 독점 방위산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윤과 납기를 좇느라 가장 기본적인 제조 공정조차 무시했다. 무기를 깐깐하게 따져보고 들여와야 할 방위사업청은 ‘눈먼 검수’로 불량 헬기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이른바 ‘K방산’의 화려한 수출 실적과 국산화라는 겉포장 뒤에서, 정작 헬기에 직접 타야 하는 조종사의 생명과 안전은 철저히 쓰레기통에 처박혔다는 매서운 비판이 쏟아진다.
◇ 매뉴얼 내팽개친 대기업, 장님 된 방사청
14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와 방사청 설명을 종합해 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군에 넘긴 미르온 엔진 57대 가운데 무려 47대(82.4%)가 심하게 녹슬어 있었다. 심지어 38대(66.6%)는 당장 부품이 쪼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치명적인 균열이 나타났다.
결함의 진원지는 프랑스 방산업체 사프란이 원천 기술을 쥐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에서 조립을 맡은 엔진 부품 디퓨저다.
방산업계 안팎에서는 한화 쪽이 해당 부품을 조립하면서 원제작사가 미리 촘촘하게 정해둔 기준 공정을 깡그리 무시했다는 짙은 의혹이 일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이 비용을 아끼고 납품 기일을 맞추려다 헬기의 가장 중요한 생명줄을 스스로 끊어버린 셈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방사청의 완전히 무너진 감시망과 군 지휘부의 끔찍한 안전불감증이다. 방사청은 불량률이 80%를 웃도는 엉터리 핵심 부품을 아무런 제재 없이 합격 처리했다.
군 당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헬기 15대를 이미 육군 항공학교에 들여와 조종사 비행 훈련에 쓰고 있었다.
방사청은 지난 4월에야 뒤늦게 엔진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다. 하지만 정작 헬기 비행을 멈춰 세운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5월에서였다.
결함을 뻔히 의심하면서도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훈련 조종사들을 언제 공중에서 엔진이 멈출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몸을 싣고 하늘로 올라가도록 방치했다.
◇ “이윤 앞세운 방산 카르텔이 빚어낸 참사”
전문가들은 관련 사태를 단순한 기계 고장이 아니라 덩치 키우기와 실적에만 눈이 먼 방산 생태계가 빚어낸 구조적인 인재(人災)로 규정한다.
국방정책과 획득 체계를 오래 연구해 온 국책연구기관의 한 군사안보 전문가는 “헬기가 하늘을 날다 엔진 출력이 떨어지거나 멈추면 조종사는 손쓸 틈도 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는 단순 하자가 아니라 조종사 목숨을 노린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초정밀 항공 부품을 다루면서 원천 기술 업체의 매뉴얼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사실은 대기업의 품질 관리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라며 “무기 전력화 일정이라는 껍데기 실적에 쫓겨 방사청이 검수를 졸속으로 넘기고, 업체는 잇속만 챙기는 고질적인 방산 짬짜미 관행이 낳은 참사”라고 매섭게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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