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효 선임기자
kei1000@alphabiz.co.kr | 2026-06-14 09:31:25
[알파경제=김종효 선임기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나스닥 상장 첫날 19% 이상 급등하며 전 세계 자본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다.
단숨에 시가총액 2조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6위 기업으로 도약했고, 머스크는 스위스의 GDP와 맞먹는 자산을 보유한 인류 최초의 '조만장자(Trillionaire)' 반열에 올랐다.
뉴욕 한복판에서는 최고급 샴페인 잔이 부딪치며 화려한 축포가 터졌다.
하지만 같은 시각, 한국 자본시장은 참담한 초상집으로 변해 있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우주 산업의 눈부신 미래"를 역설하며 76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청약 자금을 쓸어 담았던 미래에셋증권이 단 1주의 공모주도 배정받지 못한 채 ‘전액 환불’이라는 희대의 촌극을 빚어냈기 때문이다.
글로벌 메이저리그의 잔혹한 생리와 한국 금융의 얄팍한 상술이 맞물려 빚어낸 대참사의 본질을 가열차게 해부해 본다.
철저하게 현지 대표 주간사인 골드만삭스가 최종 물량 배정의 생사여탈권을 100% 거머쥐고 있는 승자독식의 무대다.
미래에셋이 4700억 원 규모의 인수 계약을 맺었다면서 동네방네 떠들었지만, 냉혹한 월가의 룰에서 이는 '여건이 되면 최대 이만큼 줄 수도 있다'는 한도액 설정일 뿐, 무조건적인 확약이 아니었다.
상장 직후 전 세계의 거대 자본이 스페이스X로 맹렬하게 쏠리자, 칼자루를 쥔 대표 주간사는 자국의 거대 헤지펀드와 큰손들을 먼저 챙기기 위해 변방 아시아 증권사의 몫을 일거에 증발시켜 버렸다.
조호진 타키온월드 대표는 "내 밥그릇을 눈앞에서 빼앗기고도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하지 못한 채 백기를 든 것, 이것이 자본의 최전선에서 당한 코리아패싱의 씁쓸한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스페이스X 상장 특수를 노리고 상장지수펀드(ETF) 편입을 호기롭게 준비하던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말 그대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을 비롯해 타임폴리오자산운용, 심지어 같은 식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조차 단 한 주도 배정받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특히 한투운용은 오전에 "물량을 배정받았다"며 대대적으로 공지했다가, 불과 반나절 만에 심야 공지로 "알고 보니 주간사가 한 주도 안 줬다"며 번복하는 역대급 망신살을 뻗쳤다.
현지 대표 주간사의 의중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김칫국부터 들이마시며 금융사의 생명인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린 셈이다.
싼값의 공모가로 주식을 선점해 펀드 수익률을 올리려던 치밀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운용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상장 이후 불기둥을 뿜으며 치솟아버린 비싼 시장가로 주식을 주워 담아야 하는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다.
◇ 흥행에 눈멀어 리스크 숨긴 기만적 상술…허공으로 날아간 7600억 기회비용
초과 수요가 발생하면 대표 주간사의 재량에 따라 물량을 통째로 뺏길 수 있다는 잔혹한 룰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배정 물량이 없을 수도 있다"는 치명적 리스크는 투자설명서 구석에 쥐똥만 한 글씨로 숨겨둔 채 '국내 유일 스페이스X 인수단 참여'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대중의 탐욕을 맹렬하게 부추겼다.
그 결과 투자자들이 입금한 76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은 청약 마감부터 환불일까지 아무 수익 없이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투자자들은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의 위상을 뽐내기 위한 남의 집 잔치에 피 같은 돈을 볼모로 잡힌 채, 수수료도 없는 무료 바람잡이 역할만 충실히 해준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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