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주요 통화에 대해 전면 약세…트럼프 관세·경기 둔화 우려 겹쳐

우소연 특파원

wsy0327@alphabiz.co.kr | 2025-07-14 09:47:33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고베) 우소연 특파원]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주요 통화 대비 전반적인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스위스 프랑 대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유로 대비로도 약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일 무역 협상의 난항과 경기 둔화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14일 전했다.


또한 일본은행의 조기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점도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물가 지표 발표에 따라 엔화 매도 압력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1일, 1달러당 147엔대까지 상승하며 약 2주 만에 엔화 약세를 나타냈다. 지난 한 주 동안 엔화는 달러 대비 2% 하락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대일 상호 관세에 대한 새로운 관세율을 제시한 서한이 엔화 약세를 심화시킨 주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서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 수출되는 모든 일본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관세율(24%)보다 1% 높은 수준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아카자와 료마사 경제재정·재생장관의 총 7차례에 걸친 방미 협상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엔화는 달러뿐만 아니라 다른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였다.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는 7일 이후 거의 매일 하락하며 1스위스 프랑당 185엔대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유로에 대해서도 8일 1유로당 172엔대로 약 1년 만에 엔화 약세, 유로 강세가 나타났다. 파운드 대비 1파운드당 199엔대 후반까지 상승하며 200엔 돌파를 눈앞에 두고 연초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율 통지 대상은 한국, 튀니지,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등 총 14개국으로 한 ‘제1탄’이며 , G10 통화 중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포함됐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은행의 와카바야시 도쿠히로 도쿄 지점장은 "이번 서한을 보면 일본이 표적이 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엔화 약세의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꼽힌다. 첫째, 일본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전망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새롭게 발표한 관세율 하에서 세계 실질 GDP는 0.62%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본의 GDP에 미치는 영향은 -0.79%로, 분야별 관세까지 고려하면 최대-1%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수출 부진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세계 평균을 웃도는 경기 둔화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쓰비시 UFJ 모건 스탠리 증권의 우에노 다이사쿠 수석 환율 전략가는 "시장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일본 경제에 대한 타격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과의 금리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국내 경기 둔화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조기에 금리 인상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리 스왑(OIS) 시장에서 연내 금리 인상 확률은 6월 말 60%에서 새로운 관세율이 발표된 후 8일에는 약 40%로 하락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투기자들의 달러 대비 엔화 순매수 포지션은 8일 기준 11만 6000계약으로 4월 말 대비 35% 감소했다. 

 

아오조라 은행의 모로가 아키라 수석 시장 전략가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엔화 순매수 포지션이 10만 계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요 G10 통화인 캐나다 달러와의 비교에서도 엔화 매도 압력이 두드러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합성 마약 펜타닐 밀수 대책에 대한 캐나다의 소극적인 태도를 이유로 8월 1일부터 캐나다 수입품에 3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에 제시한 관세율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발표 이후 외환시장에서 한때 1캐나다 달러당 106엔대 중반까지 하락했지만, 곧 회복하며 발표 이전보다 캐나다 달러 강세, 엔화 약세 흐름을 보였다. 

 

미쓰비시 UFJ 은행의 이노 테츠헤이 수석 애널리스트는 "캐나다 달러 매수세가 강한 것이 아니라 엔화 매도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내외 금리차 추이를 가늠하는 데 있어 이번 주 발표될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5월 CPI는 전월 대비 0.1%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이는 관세 부과 이전에 확보한 재고가 소진되지 않았거나 기업들의 가격 인상이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만약 6월 CPI가 시장 전망치를 크게 상회할 경우 고관세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아오조라 은행의 모로가 씨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관측이 후퇴하면서 엔화 가치가 148엔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오는 20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 결과도 엔화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소비세 감면 등을 주장하는 야당이 의석을 늘릴 경우 재정 규율 완화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면서 엔화 매도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 주요 기업들은 2026년 3월 기준 예상 환율을 평균 1달러당 143엔대이다. 이는 전기 실적 대비 약 9엔 정도 엔화 강세를 예상한 수치다.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실적 개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개인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토추 종합 연구소의 다케다 아츠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화 약세가 심화되면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어렵고 실질 임금이 플러스로 전환되지 않아 소비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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