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7-29 08:23:45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현장 질책이 대기업을 48시간 만에 움직였다.
'죽음의 빵공장'으로 불린 SPC그룹이 대통령 방문 이틀 만에 8시간 초과 야근 전면 폐지를 전격 발표하며, 3년간 반복된 산업재해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 SPC 찾은 이재명 대통령, 34차례 송곳질문
지난 25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김범수 SPC삼립 대표에게 "사고 시간이 몇 시였나", "왜 12시간씩 일을 시키냐",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얘기하냐" 등 무려 34차례의 질문을 던졌다.
특히 "일주일에 나흘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풀로 12시간씩 일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며 심야 장시간 근무를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직접 지목했다.
이 대통령의 질책은 경제 논리까지 파고들었다.
이 대통령은 "12시간 근무하면 초과 4시간은 법상 150% 임금을 줘야 하는데, 차라리 8시간씩 3교대가 인건비 면에서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에 SPC 측은 "기본급이 낮아 8시간 교대 시 총 임금이 부족해 노동자 모집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통령은 "결국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통령의 강한 반응에는 개인적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SPC의 대응은 신속했다. SPC는 27일 긴급 대표이사 협의체를 개최하고 8시간 초과 야근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한 생산시스템 전면 개편안을 발표했다.
인력 확충, 생산품목 조정, 라인 재편 등을 통해 10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생명을 귀히 여기고 안전비용을 충분히 감수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한 지 이틀 만에 SPC가 변화로 답했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 과로사까지 SPC 6명의 죽음
SPC는 그동안 알려진 기계 끼임 사고 3건 외에 과로로 인한 사망자가 3명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SPC삼립 직원 1명이 뇌혈관질환으로, 2024년 파리크라상 직원이 심장질환으로, 같은 해 샤니 직원이 뇌혈관질환으로 각각 사망해 산재 승인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주당 최대 70시간에 달하는 주야간 교대 근무자였다.
결국 2022년부터 2025년까지 SPC그룹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기존 알려진 3명에서 6명으로 두 배 늘어났다.
2022년 10월 SPL 평택공장 박선빈씨(23), 2023년 8월 샤니 성남공장 50대 여성, 올해 5월 SPC삼립 시화공장 50대 여성이 모두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시간대에도 일정한 패턴이 나타났다. 3건의 사망사고 중 2건이 새벽 시간대에 발생했으며, 모두 12시간 장시간 근무와 연관됐다. 시화공장에서 숨진 50대 여성도 새벽 3시경 윤활유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SPC는 2022년 첫 사망사고 이후 안전경영에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2024년 말 기준 84%인 835억원을 집행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투자 내역을 보면 고강도·위험작업 자동화(228억원), 안전설비 확충(225억원) 등 하드웨어 중심이었고, 교육훈련비는 고작 4000만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접근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단순한 설비 교체가 아니라 교대근무 개선, 적정 인력 배치, 안전교육 강화 등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중대재해처벌법 3년, 여전한 '처벌의 공백'
SPC 사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2025년 2월 기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75건 이상이지만, 1심 판결이 선고된 건은 36건에 불과하다. 이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고 경영진의 책임이 대표이사 선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지적된다.
2022년 SPL 사고의 강동석 전 대표이사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유족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로부터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노동계는 "선택적 총수"라며 비판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룹 총수까지 책임을 묻는 사례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1심 판결이 내려진 31건 중 29건이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대부분 중소기업(87.1%)에 집중됐다. 대기업 사례에 대한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 개입이 중대재해처벌법보다 더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낸 셈이다.
◇ 10월 1일 개선안, 실효성 전망은
SPC의 전격적인 개선 발표에도 불구하고 실제 변화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개선을 약속했지만 사고가 반복됐던 만큼, 이번에는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SPC는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고, 공장 가동 시간을 24시간에서 20시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2027년까지 2조 2교대 비중을 20% 이하로 낮춘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난관이 예상된다. 8시간 교대제로 전환하면서 인력 확충이 필요하지만,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 문제는 여전히 해결책이 없다.
SPC는 "노조와 논의하겠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관건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메시지가 일회성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10월 1일 시행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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