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3-07 08:18:21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중국의 저가 공세와 전기차 수요 둔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가 '46mm 원통형 배터리'에 승부수를 걸었다.
'인터배터리 2025'에서 세 기업은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는 46mm 원통형 배터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술 리더십을 통한 시장 탈환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 인터배터리 2025, 역대 최대 규모 개최
지난 5일 개막해 오는 7일까지 열리는 '인터배터리 2025'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 중이다.
688개 기업이 참가했으며, 해외 기업 참가도 지난해 115곳에서 올해 172곳으로 크게 늘었다. 전시 면적은 작년보다 20% 이상 확대됐고, 사전 등록 인원만 5만 명을 넘어 지난해(4만3000명)보다 17% 증가했다.
특히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이자 2위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 BYD가 처음으로 인터배터리에 참가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BYD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보려는 관람객들로 BYD 부스는 북적였고, 이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현재 K-배터리 3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K-배터리 3사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14%로 전년 대비 10%포인트 하락했다.
국내 1위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의 시장 점유율도 9%로 전년(13%) 대비 4%포인트 떨어졌다.
중국의 CATL과 BYD는 저가 배터리로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며 K-배터리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저가 전기차가 잘 팔리면서 중국 업체 주력인 LFP 배터리 수요가 커진 것이 주된 이유다. 또한 새로운 성장 분야인 에너지저장장치(ESS)에 LFP 배터리가 주로 사용되는 점도 중국 업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 '게임 체인저' 46mm 원통형 배터리
이러한 상황에서 K-배터리 3사는 차세대 기술인 46mm 원통형 배터리에 승부수를 띄웠다.
'46파이'로 불리는 지름 46mm 원통형 배터리다. 이 배터리는 기존 원통형 배터리(지름 21mm, 높이 70mm의 '2170' 타입)보다 에너지 용량과 출력이 최소 5~6배 높아 배터리 업계에서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46mm 원통형 배터리는 미국 테슬라가 높이 80mm인 '4680'(지름 46mm, 높이 80mm) 배터리를 도입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생산이 편하고 저렴하다는 원통형 배터리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크기를 키움으로써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차량 내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K-배터리 3사는 모두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삼원계 기반의 46mm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중국 업체들의 주력인 LFP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성능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3사는 향후 전기차를 구매할 때 가격보다 안전성, 디자인, 성능에 비중을 두는 시대가 오면, 보급형이 아닌 프리미엄 배터리가 완성차 업체의 '러브콜'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특히 46mm 원통형 배터리는 크기가 커진 만큼 발열 문제가 중요한데, K-배터리 3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며 중국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 46파이 배터리로 승부수 던진 K-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은 인터배터리 2025에서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를 전면 공개했다. 'Empower Every Possibility, Imagine Better Tomorrow'라는 주제로 46시리즈 배터리 라인업(4680, 4695, 46120)을 처음으로 대중에 선보였다.
특히 46시리즈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배터리팩을 모듈 없이 셀을 직접 팩에 탑재하는 '셀투팩(CTP)' 형태로 전시해 주목받았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는 "1분기나 상반기 정도가 배터리 업황 저점이 될 것"이라며 "시장이 정리되고 수요가 늘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잘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또한 BMTS(Battery Management Total Solution) 관련 차별화된 기술을 전시하며,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서비스 사업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했다.
삼성SDI는 차세대 46파이 원통형 배터리의 라인업을 전격 공개했다.
이번에 전시된 제품은 '4680, 4695, 46100, 46120' 등 4개로, 지름은 46mm로 모두 같고 높이는 각각 80mm, 95mm, 100mm, 120mm다.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라인업을 다양화했다는 설명이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저희가 46파이 배터리에 구체적인 고객을 확보했다"면서 "고객사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이미 샘플을 제출했으며 양산도 곧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SDI는 1990년대 말부터 원통형 배터리 생산을 시작해 오랜 기간 안정적인 생산 및 공정 기술을 축적해왔다는 강점을 내세웠다.
또한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통해 차세대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미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 'S-라인'을 준공하고 3개 완성차 업체에 프로토타입 샘플을 공급하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K온은 인터배터리 2025에서 처음으로 원통형 배터리 실물 모형을 공개했다.
박기수 SK온 연구개발(R&D) 본부장(부사장)은 "46파이 배터리 개발을 완료했고 양산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46파이 양산 레코드를 가져가기 위해 내부적으로 생산 기술 방향성을 잡아서 차별화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SK온은 주력 제품이 파우치형 배터리인데, 원통형 수요가 높아져 46파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각형 배터리도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박기수 부사장은 SK엔무브와 함께 개발 중인 액침냉각 기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액침냉각은 절연성 냉각 플루이드를 배터리 팩 내부에 순환시켜 열을 효과적으로 방출하는 시스템으로, 급속충전 등 발열이 심한 상황에서도 배터리 셀 온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 안전성을 높인다.
◇ 기술 경쟁력 확보로 글로벌 시장 반격
K-배터리 3사는 단기적인 시장 점유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와 혁신을 지속한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현재의 시장 상황을 고려해 투자 규모와 속도는 조정하는 신중한 접근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46mm 원통형 배터리는 이러한 기술 경쟁력 확보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포스코퓨처엠의 엄기영 대표는 "중국을 벗어나려는 여러 완성체 업체들의 러브콜이 있다"며 '탈중국' 가치사슬에 올라타 반사이익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중 무역갈등과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K-배터리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은 전기차 시장이 초기 도입기를 지나 본격적인 성장기로 접어들면, 단순한 가격 경쟁력보다는 기술력과 품질이 더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환경 변화가 K-배터리 3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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