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안전 전문가' 송치영 CEO도 못 막았다…포스코이앤씨, 신안산선서 8개월 만 또 참사

신안산선, 8개월 만에 되풀이된 악몽
대통령 질타에도 멈추지 않은 죽음
하청에 떠넘긴 위험, 96% 현장이 법규 위반

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12-23 08:24:03

포스코이앤씨 송치영 대표이사가 14일 서울 중구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건설사 간담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18일 서울 여의도 지하 70m 깊이의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철근 구조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콘크리트 타설 차량을 운전하던 50대 노동자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는 포스코이앤씨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올해 다섯 번째 사망 사고이자, 신안산선 라인에서만 두 번째 비극이다.

특히 '안전 전문가'를 자임하며 구원투수로 등판한 송치영 사장 취임 불과 4개월 만에 발생한 참사라는 점에서 경영진의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23일 업계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18일 오후 1시 22분쯤 여의도역 인근 신안산선 4-2공구에서 너비 34m, 길이 30~40m 규모의 대형 철근망이 낙하했다.

지하 70m 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7명 가운데 타설 차량 운전자 A씨(53)는 철근에 깔려 사망했다. B씨(62)는 발목 부상을 입었다.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사장은 현장을 찾아 "지난 4월 신안산선 광명 터널 붕괴 이후 전사적인 안전 강화 조치를 추진해왔음에도 또다시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점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반복되는 사과는 현장에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포스코이앤씨는 올해 1월 김해를 시작으로 4월 광명·대구, 7월 의령에 이어 이번 여의도 사고까지 총 다섯 건의 중대재해를 기록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 신안산선, 8개월 만에 되풀이된 악몽

이번 사고가 더욱 뼈아픈 이유는 동일한 노선인 신안산선 현장에서 8개월 만에 사고가 재발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1일,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5-2공구에서도 터널 붕괴로 작업자 1명이 매몰돼 실종 125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당시에도 지반 침하 징후가 있었음에도 공사를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두 사고의 구조적 배경은 유사하다. 신안산선은 경기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를 잇는 총연장 44.9㎞의 광역철도로, 수도권 서남부 초대형 민자 사업이다.

문제는 공기 지연과 난공사 압박이다. 지하 40~70m 대심도 구간은 작업 환경이 극도로 열악하고, 민자 사업 특성상 개통 지연은 막대한 지체상금으로 이어진다. 이는 현장에서 무리한 공기 단축을 시도하게 만드는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미 광명 사고 여파로 신안산선 개통은 2028년 12월로 2년 연기된 상태다. 이번 여의도 사고 원인이 부실 시공으로 판명될 경우, 전체 구간에 대한 재시공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8일 서울 여의도역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작업자 1명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공사를 맡았던 포스코이앤씨의 송치영 사장이 현장을 찾아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CSO 출신' 송치영 사장, 왜 막지 못했나

송치영 사장은 포스코그룹 대표 안전 전문가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포스코이앤씨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역임하며,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 '사망사고 0건'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국내 10대 건설사 중 유일한 성과였다.

그는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안전보건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고, CSO로서는 처음으로 사내이사에 선임돼 안전정책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가 포스코엠텍으로 자리를 옮긴 뒤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사망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올해 연이은 사고로 정희민 전 사장이 취임 8개월 만에 사임하자, 포스코그룹은 8월 6일 송치영을 다시 불러들였다.

송 사장은 취임 직후 전국 103개 현장의 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안전 점검을 실시했으며 신규 수주까지 중단하는 강수를 뒀다.

이 과정에서 3분기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5% 감소했고, 261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경영 실적을 희생하며 안전을 챙겼음에도 4개월 만에 한계를 드러냈다. 12월 여의도 사고는 CSO 출신 CEO조차 막지 못하는 건설 현장의 구조적 난맥상이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기남부경찰청과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이 경기도 광명시 포스코이앤씨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의 미얀마인 근로자 감전 사고와 관련해 12일 포스코이앤씨 인천 본사(인천 연수구) 압수수색을 위해 사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대통령 질타에도 멈추지 않은 죽음

올해 포스코이앤씨가 써 내려간 죽음의 기록은 참담하다.

1월 15일 김해 아파트 현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사했고, 4월에는 광명 터널 붕괴와 대구 주상복합 현장 추락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7월 의령 고속도로 현장에서는 60대 노동자가 장비에 끼여 숨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라는 회사에서 올해 들어 네 번째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싶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 6일 만인 8월 4일, 광명-서울 고속도로 현장에서 30대 미얀마 노동자가 펌프 점검 중 감전 사고를 당해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결국 정희민 사장이 물러나고 송치영 사장이 투입됐지만, 4개월 만에 다섯 번째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18일 서울 여의도역 신안산선 공사 현장 지하 약 70미터 지점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차량 위를 낙하한 철근들이 뒤덮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하청에 떠넘긴 위험, 96% 현장이 법규 위반

올해 사망자 5명 중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김해, 대구, 여의도 사고 피해자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위험한 업무는 하청에 전가되고, 그에 따른 죽음 또한 하청의 몫이 되는 '위험의 외주화'가 고착화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 23곳을 불시 점검한 결과, 22개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규칙 위반이 적발됐다. 위반율은 무려 96%에 달했다.

통로 미설치, 방호 조치 미흡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고용부는 2억464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정부는 영업정지와 면허 취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면허 취소는 '구조물 붕괴로 공중의 위험을 발생시킨 경우'에 한정되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영업정지 역시 요건이 까다롭다.

설령 처분이 내려져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통해 법적 공방을 이어가며 공사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영업정지 효력은 정지되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수년이 걸리는 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결국 포스코이앤씨의 위기는 단순한 법적 제재나 CEO 교체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안전 투자 여력이 부족한 영세 업체가 위험 작업을 떠맡는 현실, 공기 단축 압박, 그리고 숙련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고 재발의 고리는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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