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식 기자
ntaro@alphabiz.co.kr | 2025-04-16 08:16:31
[알파경제=김교식 기자] 금융감독원이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 9곳을 정조준하며 상장지수펀드(ETF) 관련 자료 일체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최근 자산운용업계의 잇따른 문제와 과열 경쟁에 금감원이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직접 칼을 빼든 조치로, 이복현 금감원장이 경고했던 기강잡기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 '스와프 담보'부터 '유동성 공급자' 까지… 금감원, ETF 핵심 자료 일제 요구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1일 삼성·미래에셋·KB·한국투자·신한·키움·한화·NH아문디·타임폴리오 등 국내 주요 운용사들에게 ETF 구조와 거래 관련 자료 일체를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합성 ETF의 스와프 담보 내역 △주식 대차거래 내역 △ETF 설정 및 환매 내역 △ETF 괴리율 공시내역 등이 포함됐다.
금감원은 합성 ETF 스와프 담보 현황을 통해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담보 자산이 적절한지, 스와프 구조상 신용 리스크가 과도하지 않은지 점검할 방침이다.
최근 운용사 11곳의 ETF 170종에서 실시간 추정 순자산가치(iNAV)가 실제 가치보다 높게 반영되는 오류가 발생한 가운데, 괴리율이 과도한 ETF가 있었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운용사와 유동성공급자(LP) 간의 설정 관행 문제도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LP들이 잔고가 소진되지 않았음에도 운용사들의 수탁고 경쟁 때문에 일부 운용사로부터 ETF에 대한 설정을 강요받고, 설정을 거부할 경우 특정 ETF에 대한 LP 참여를 제한당하는 경우가 지적되어 왔다.
이외에도 금감원은 △운용사의 보수 전가 △과도한 마케팅 경쟁 △보수 인하 과당 경쟁 등 업계의 문제점들을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
커버드콜 ETF와 관련해서는 투자자 기만 가능성도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말 7748억원 규모였던 커버드콜 ETF 시장은 2024년 들어 4조원대로 급성장한 가운데, 종목명에 목표분배율을 기재한 상품들이 난립하면서 투자자들을 현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 ETF 시장 '무법지대' 끝났나
최근 ETF 시장은 각종 사고와 무분별한 경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삼성과 미래에셋 양대 운용사의 살인적 보수 인하 경쟁이 격화했고, 미래에셋운용은 배당금 축소 지급 논란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해 말 신한투자증권에서 ETF 선물 매매 관련 1300억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운용 손실이 터졌으며, 최근에는 운용사 11곳의 ETF 170종에서 실시간 추정 순자산가치(iNAV) 산출 오류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0일 '금융감독원-자산운용사 CEO 간담회'에서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최근 일부 대형사를 중심으로 외형 확대를 위한 보수 인하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운용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펀드 가격(NAV) 산정에서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투자자의 신뢰를 근본부터 흔드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특히 이 원장은 "본연의 책무를 등한시하고 노이즈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운용사에 대해 펀드 시장 신뢰 보호를 위해 상품운용 및 관리체계 전반을 점검하겠다"며 더 이상 자율규제라는 미명 하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칼날을 들이댔다.
이는 급성장한 ETF 시장이 무법지대로 변모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의 무분별한 경쟁이 투자자 피해로 직결되는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금감원의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특히 iNAV 산출 오류는 투자자들이 ETF를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사도록 만들어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금감원의 분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또 자산운용사가 자본시장법에 따라 투자자에 대한 충실의무가 명시적으로 부여됨에도 "형식적인 의결권 행사와 대주주·임직원 사익 추구, 계열사 등 이해관계인에 치우친 의사결정 등 투자자 최우선 원칙을 훼손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 '군기 잡기'에 자산운용업계 긴장
업계는 금감원의 이번 행보를 가히 '섬뜩한 기강잡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중소형사에까지 ETF 시장 관련 핵심 자료를 일제 요청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자산운용사 CEO들은 이복현 원장과의 간담회에서 과도한 ETF 마케팅 경쟁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외화표시 ETF 상장 허용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 등을 요청했다.
또한 펀드 가입 절차 간소화, 장기적립식·채권형 상품에 대한 세제상 혜택 부여 등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조사와 별개로 ETF 시장의 제도적 개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금감원의 이번 ETF 시장 사정 작업은 무분별하게 팽창한 ETF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립하고 투자자 보호에 철퇴를 가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 알파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