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거래소의 금감원 패싱?…상장사 정보누락에도 뚜렷한 대책 없다

"알았지만 안 알려줘" vs "받은 바 없다"
알맹이 없는 대책…'뾰족한 수 없다'
반복되는 '정보 사각지대'…구조적 결함 방증

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6-20 08:15:07

한국거래소. (사진=한국거래소)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코스닥 상장을 목전에 두고 본격적인 공모 절차에 돌입하려던 도우인시스의 기업공개(IPO) 절차가 돌연 멈춰 섰다.

투자자 판단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주 간 이면 계약'을 증권신고서에서 통째로 누락한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의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한 기업의 공시 실패가 아닌 해당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시장의 1차 문지기인 한국거래소와 최종 감시자인 금융감독원 사이의 소통 단절에서 비롯됐다.

◇ "알았지만 안 알려줘" vs "받은 바 없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도우인시스는 지난 17일 현 최대주주 등과 전 최대주주 간 주식 매매 계약을 추가한 정정신고서를 공시했다. 이에 16일부터 진행하던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중단했다.

한국거래소는 상장예비심사 과정에서 현 최대주주 뉴파워프라즈마와 전 최대주주 삼성벤처투자 간 주주계약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 계약에는 도우인시스 상장 후 뉴파워프라즈마가 2029년까지 인수가의 2배를 초과하는 수익을 얻을 경우 초과이익의 10%를 삼성벤처투자에 지급한다는 수익공유 조항이 담겨 있었다.

또한 삼성벤처투자가 이사 추천권, 기술 이전·양도 금지 권한 등 강력한 경영 통제권을 유지하기로 한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거래소는 이 정보를 금감원에 전달하지 않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알파경제에 "상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증권신고서는 감독원에서 받는 것이어서 회사에 넣으라 마라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현행 제도상 거래소가 금감원에 정보를 의무적으로 전달할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의 '패싱'을 정당화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 알맹이 없는 대책…'뾰족한 수 없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 회사, 상장 주관사 등 어디에서도 해당 계약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보 공유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고는 볼 수 있어"라고 인정하면서도 "지금 딱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종 감시 기관인 금감원이 스스로 무력함을 드러낸 셈이다.

금감원은 그나마 "회사가 1차적으로 기재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거래소와 크로스체크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미봉책 수준의 방안만 제시했다.

이번 사태로 도우인시스는 16일부터 진행하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중단하고 7월로 일정을 연기해야 했다.
 

(사진=연합뉴스)


◇ 반복되는 '정보 사각지대'…구조적 결함 방증

도우인시스 사태는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지난해 이노그리드의 코스닥 상장 취소 사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패턴을 보인다.

이노그리드 역시 최대주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상장예비심사 신청서에 기재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발각돼 코스닥 개장 이후 최초로 상장 승인이 취소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23년 파두의 '뻥튀기 상장' 사태가 있다. 당시에도 거래소와 금감원 간 정보공유 체계 강화가 약속됐지만, 도우인시스 사태로 그 약속이 공허했음이 드러났다.

거래소 관계자도 "정보 공유에 허점이 드러났다고 인정한다"며 "재발 방지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의 IPO 심사가 거래소의 '상장 적격성' 심사와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심사로 이원화돼 있으면서도 유기적 연동 체계는 없는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거래소는 '이 기업을 시장에 들여보내도 되는가?'라는 관점에서 재무 상태나 경영 안정성 등 최소한의 자격을 심사한다. 반면 금감원은 '투자자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아는가?'라는 관점에서 공시 내용의 완전성을 따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조적 허점이 발생한다. 도우인시스가 숨긴 '초과이익 10% 공유' 조항과 '기술 이전·신회사 설립 금지' 권한을 거래소는 '모회사 주주 간의 문제'로 치부했다. 반면 금감원은 회사의 미래 성장성을 제약하고 잠재 이익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독소 조항으로 판단했다.

거래소가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정보를 넘기지 않는 순간,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정보는 '규제의 블랙홀'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한국거래소. (사진=연합뉴스)


◇ 협의 수준 넘어선 제도적 개편 시급

이런 가운데 양 기관이 제시한 대안은 협의와 논의 수준에 그쳐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모든 심사 내용을 일일이 공유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주주간 계약 건에 대해서라도 정보공유를 하도록 거래소와 방안을 논의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반복됐던 미봉책과 다를 바 없다.

파두 사태 이후에도 정보공유 강화 방안이 발표됐지만 이번 사태로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구속력 없는 '협의'나 '논의' 수준으로는 기관 이기주의나 업무 편의주의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 시스템의 후진성이 더욱 부각된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 등록 서류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가지며, 영국은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상장 승인과 공시를 통합 관리한다.

반면 한국은 거래소와 금감원이 분리된 채 정보 단절이 상시화돼 있다.

업계에서는 거래소의 예비심사 과정에서 파악된 모든 중요 정보를 금감원에 의무적으로 이관하는 법제화나, 영국식 통합 심사 모델 도입 등 근본적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주호 엄브렐라리서치 대표이사는 "현재와 같은 이원화 구조에서는 제2, 제3의 도우인시스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정보공유 의무화 같은 제도적 강제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우인시스 사태는 개별 기업의 일탈이 아닌, IPO 심사 체계의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협의'라는 미봉책을 넘어 정보 공유를 의무화하는 제도적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투자자 보호라는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은 언제든 다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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