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장인화 회장 '안전 혁신' 외쳤지만…포스코, 끝없는 인명 사고

대통령 질타에도 멈추지 않은 죽음의 행렬
87.7% 하청 노동자...위험의 외주화 극명
장인화 회장 안전 혁신 약속, 3개월 만에 휴지조각

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11-26 08:13:53

(사진=연합뉴스)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포스코 계열사의 반복되는 산재 사고를 "미필적 고의 살인"이라고 강력 질타한 지 약 4개월 만에,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또다시 근로자 6명이 유해가스에 쓰러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장인화 회장의 안전 혁신 약속에도 사고가 반복되면서, 포스코의 안전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년간 사망자의 87.7%가 하청 노동자라는 통계는 위험을 외주화한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대통령 경고 4개월 만에 또 터진 참사

2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1시 30분쯤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스틸(STS) 4제강공장에서 슬러지 청소 작업을 하던 용역업체 직원 2명과 포스코 정규직 직원 1명이 일산화탄소로 추정되는 유해가스를 흡입해 쓰러졌다.

사고 당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된 3명 중 1명은 다행히 의식이 일부 돌아왔으나, 나머지 2명은 여전히 중태에 빠져 있다.

현장에 출동해 구조 작업을 벌이던 포스코 자체 소방대원 3명도 가스를 흡입해 치료를 받았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가스 측정 장비 미지급, 보호구 착용 지침 위반 등 기본 안전조치 부실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사망 사고를 두고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 사고가 나는 것은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강도 높게 질타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발생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살자고 간 직장이 전쟁터가 된 것"이라며 "사람 목숨을 작업 도구로 여기는 것 아니냐"고 분노했다.
 

24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본사 앞에서 열린 포스코 중대재해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보름 간격 연쇄 사고…88%가 하청 노동자

문제는 이번 사고가 지난 5일 포항제철소 소둔산세공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유해 가스 흡입으로 사망한 지 불과 보름 만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당시 전기 케이블 설치 작업 중 작업자가 밟고 지나가던 배관이 파손되면서 내부의 맹독성 화학물질이 분출됐다. 50대 작업자 1명이 전신 화상과 독성 물질 흡입으로 숨졌고, 20~30대 작업자 3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배관이 작업자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파손됐다는 사실은 설비 부식이 심각한 수준임에도 주기적인 점검과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통상적인 가스 질식 사고가 밀폐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과 달리, 이번 사고는 개방된 야외에서 중태자가 발생할 만큼 누출된 가스의 농도가 치사량을 상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배관 부식이나 찌꺼기 제거 중 충격에 의한 누출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올해만 포스코 사업장에서는 5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3월 21일 포항제철소 냉연공장에서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코PR테크 직원이 수리 작업 중 설비에 끼여 숨졌고, 7월 14일에는 광양제철소에서 배관 철거 작업 중 작업자 2명이 추락해 1명이 사망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포항지부 집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포스코 사업장에서 발생한 54건의 주요 인명 사고로 57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 사망자 가운데 포스코 소속은 단 7명(12.3%)에 불과했다.

나머지 50명(87.7%)은 하청·외주·계열사 소속이었다.
 

(사진=연합뉴스)


◇ 장인화 회장의 '안전 혁신', 말뿐인 약속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 7월 31일 포스코이앤씨의 5번째 사고 직후 안전관리 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회장 직속으로 그룹 안전특별진단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 그룹 차원의 안전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8월에는 광명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 "연이은 사고에 통렬히 반성한다"며 "재해의 근본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9월에는 유럽으로 직접 건너가 글로벌 안전 컨설팅 기업 SGS와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안전혁신·미래전략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장 회장은 8월 22일 '그룹 안전 특별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그룹 사업장에서 모든 작업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귀가할 수 있도록 현장 목소리를 경청해 직원이 재해 예방의 주체가 되는 안전 관리 체제로 혁신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안전 전문회사', '산재가족돌봄재단' 설립 등도 약속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11월,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계는 "말뿐인 혁신, 반복되는 인명 사고, 현장 체감 없는 구호가 포스코 안전 경영의 문제"라며 "책임자만 바뀌고 현장 위험은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잇따른 사고로 장 회장의 3연임 가능성도 타격을 받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 3연임 관련 규정을 변경해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도록 조건을 강화했다.

높은 주주 지지를 기반으로 선임됐다는 인식을 강화하려 했지만, 연이은 중대 산업재해 발생으로 해당 결정의 상징성이 퇴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포스코는 사고 발생 때마다 "특별진단 TF 운영, 글로벌 안전 컨설팅, 안전 전문 자회사 설립, 전담 조직 신설" 등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노후 배관 교체나 하청 구조 개선 같은 근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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