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은 기자
star@alphabiz.co.kr | 2025-06-09 07:08:34
[알파경제=이고은 기자] 이병헌 감독은 특유의 '말맛 코미디'로 대한민국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영화 '극한직업'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혜성처럼 등장한 이병헌 감독은 숏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전통매체로 분류되는 영화에서 태블릿이나 모바일로 플랫폼이 달라졌을 뿐 이병헌 감독 특유의 위트와 인간미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평가다.
지난 몇 년간 넷플릭스(OTT)와 유튜브, 틱톡 등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국내 영화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영화 업계는 그야말로 고사직전까지 내몰렸다.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이름을 알린 이병헌 감독은 최근 숏폼 드라마 '작자미상'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25년 6월 5일자 이병헌 감독, 영화감독 넘어 유튜브 숏드라마 도전 참고기사>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플리즈 프레이 포 미 투 러브(Please Pray for me to Love)'를 통해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은 웹드라마 '작자미상'을 공개했다.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이병헌 감독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라고 원론적인 얘기를 할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인터뷰 첫 마디는 “어려운 영화 업계에서 일하는 동료(동생)들에게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꺼냈다.
제작비 상승 여파와 기존 방송 플랫폼들의 제작 심리 위축에 따라 장편 작업을 하기 어려워졌고, 함께 영화를 제작했던 동생들이자, 스태프들 역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누구보다 그들이 겪고 있을 고충을 잘 아는 듯 했다. 이병헌 감독은 숏폼 드라마의 손익분기점(BEP) 목표 달성 전까지 무보수로 작품에 참여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작자미상'은 총 4편으로 구성된 숏폼 드라마로, 각 편당 10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에는 배우 오디션에 단 한 번도 붙지 못한 가난한 여자 '미니'와 복수를 꿈꾸며 계란빵 장사를 하는 남자 '짜미'가 등장, 좌충우돌 만남을 통해 용서와 응원을 주고받는 휴먼 코믹 스릴러다.
이번 작품에는 이루마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루마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음악 세계를 선보이고 싶었고, 이병헌 감독의 오랜 팬이라 합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이병헌 감독 인터뷰>
기자) 감독님 요새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엄청 많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쇼트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일을 좀 벌여 놨고, 집에서 대부분 글을 쓰는데,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취미는 가급적 안 가지려고 하는데, 일주일에 한번 정도 쉬는 날 걷기 등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유일해요.
집에 있는 걸 너무 좋아해요. 누가 돈만 주면 집에서 안나갈 자신이 있거든요. 요즘 배달도 잘돼 있고, 식재료만 있으면 음식도 직접 합니다. 요즘은 양념 있는 음식을 주로 요리하고 있습니다.
계획형 인간은 아닌데, 집에 있는 동안 시간표를 짜 놓을 만큼 하루를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는 편이에요.
기자) 집에 혼자 계시는 걸 선호 하시나 보네요.
어차피 일을 하게 되면은 촬영하고, 사람을 만나 식사나 술을 마시죠. 사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굳이 친구들을 따로 만나기 위해 시간을 잡는 등 그러진 않아요.
비즈니스에 엮인 어떤 그런 시간만 해도 너무 바쁩니다. 가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입니다.
기자) 연출 철학이나 스타일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철학을 논하기에는 제가 아직 공부 중이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게 순서인 것 같아요.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필요한 이야기인가 그렇게 먼저 접근을 해보고 괜찮은 이야기라고 생각되면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다루기도 사실은 쉬워요.
연출 철학이나 스타일이나 거창한 무언가를 할 말은 없는데, 어쨌든 제일 중요한 건 ‘리듬(rhythm)’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해 내가 어떤 이야기를, 어떤 톤으로, 어떤 색깔로 할 거야가 정해지면, 그에 맞는 리듬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리듬의 부조화를 싫어합니다. 아직 독특하고, 유니크한 새로움보다 조금 익숙한 걸 재미있게 만드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기자)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많이 찾는다고 보면 되겠군요.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고 봐야겠네요. 어쨌든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메모하고 기억하려고는 해요.
제일 좋아하는 공연이나 뮤지컬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좀 더 다르게 생각(해석)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언가 그 아이디어나 영감들이 나한테 허락되는 그 순간들에 대해서 큰 쾌감을 얻기도 합니다.
다만, 요즘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좀 무뎌지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앞서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있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 감정에 빠져들었을 때, 굉장한 생동감이 있잖아요.
현장 공기들, 배우들의 연기와 움직임, 그런 기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저마다 관객에게 메시지와 여운을 남깁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공연을 보면 재미있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자) 유튜브 채널 론칭한 이유와 유튜브라는 플랫폼 선택한 이유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우선은 꼭 유튜브일 필요는 없었는데 제가 이제 쇼 드라마나 이렇게 짧게 끝나는 작업에 대한 관심이 들었던 거는 작년에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집에서 뭐 하루 종일 책 읽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을 보냈어요.
또 어떤 육체적이고, 정신적으로 약간 힘든 부분들도 있었고 너무 오래 일했더라고요. 제가 쉬지 않고 일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쉬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죠. 지금처럼 오랫동안 쉰 적이 없는데, 바로 느껴졌어요. 순수한 형태의 작업, 단편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단편 영화라는 건 어쨌든 큰 제작 비용이 필요하고, (영화업계) 경기도 너무 좋지 않았어요. 특히 불황으로 인해 (쉬고 있는) 인력들도 많아지게 되고 양극화는 더 심해졌죠.
어차피 이런 작업을 할 거라면 좀 더 수익을 낼 수 있는 형태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도 순수한 갈망을 재미있게 채울 수 있고, 동생들에게도 일자리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다 같이 모여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다만,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수익만큼은 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해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일단 글은 제가 써주고, 너무 재밌더라고요. 모두 신나게 일을 했던거 같습니다.
물론 예산 등 문제로 표현의 규제나 제약이 너무 컸지만, 그 안에서도 재미있게 일하고, 작품을 만들면서 오랜만에 설레게 촬영에 임했어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업을 하다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어 보자는 목표나 의지도 컸던 거 같아요.
순수한 목적에 저는 노게런티로 참여했고, 어떤 수익이 발생한다면 100% 다시 제작하는데, 재투자할 생각입니다. 결국 ‘재미’가 첫번째 과제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의 어떤 피곤함이 쌓여가는 것 말고, 일하면서 즐겁게 재미있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기자) 채널명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보통 PPL은 광고를 뜻하는데 좀 의도된 중의적 표현인지 궁금합니다.
일종의 구걸 같은 건데 이게 PPL이 없어도 최대한 하기는 하겠죠. 근데 있으면 좋다. 근데, 우리가 이야기하고, 표현하며, 우리 색깔을 입혀보고 싶었어요.
재미있고 위트 있는 그런 채널명을 고민했고, 운전 하면서 문득 떠올랐던 거예요.
우리만의 재미있는 글과 연출을 추구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축은 예산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귀엽게 어필할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하다가 PPL을 다른 문장으로 만들어 본 겁니다.
“플리즈 플레이 포미 투 러브가 어쨌든 내가 우리가 내가 사랑할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라는 뜻인데, 그래도 너무 뻔뻔하지 않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이 된 거 아닌가 싶어요.
기자) ‘숏츠 드라마’라는 짧은 호흡의 형식이 연출자로서 어떤 점이 새로웠는지요.
사실은 저한테 새로운 건 아니죠 그 단편 영화도 했었고 쇼 드라마도 웹 드라마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로운 건 없지만, 형태의 변화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공감을 얻느냐는 계속 찾아 가야죠.
기자) 마지막 질문 가벼운 질문인데요. 구독자 수 목표가 있을까요.
사실 지금 너무 안나와 뭐라고 해야할 지, 또 지속 가능한 정도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유튜브를 솔직히 잘 안 보거든요. 채널을 운영해 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채널 운영자에게 “나는 개런티를 받지 않겠다 대신 비즈니스적인 어떤 재정적인 운영 측면에서도 자유롭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걸 통해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었던 거 같아요. 좀 더 크리에이터로써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제작과 운영이 구분됐고요. 솔직히 구독자가 많으면 좋죠. 근데 잘 모르겠어요. 다만,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아요. 올해는 꾸준히 만들어 보려고 다짐했습니다.
기자) 감독님이 이제 드라마 유튜브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대본이랑 연출을 모두 맡으셨잖아요.
혹시 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가장 충돌했던 순간이 있을까요.
집필자로서 또 연출자로서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면서 뭔가 충돌됐던 순간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제가 어쨌든 연출은 다 할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쓴 대본은 제가 연출하고 싶거든요. 이전 동생한테 연출을 맡겼는데, 제 스타일은 한 번 맡기면 참견하지 않아요.
연출은 또 연출만의 다른 영역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제가 감히 끼어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아요. 근데, 제 욕심은 사실 참견하고 싶죠.
‘작자미상’ 같은 경우는 첫 작품이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연출을 맡아 시작했습니다. 다만, 제가 연출을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게 고충이라면 고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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