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을 가르는 역사의 순간, 지유찬의 21초66 신화

싱가포르의 푸른 수면 위에서 쓰인 한국 수영의 새 장(章)

박병성 기자

star@alphabiz.co.kr | 2025-08-02 02:03:35

▲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5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고 결승에 오른 지유찬. [로이터=연합뉴스]

 

[알파경제=박병성 기자] 싱가포르 아레나 수영장, 7월 1일 오후 - 물방울이 공기 중에 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관중석의 숨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대구시청 소속의 지유찬(22)이 스윔-오프(Swim-off)에서 21초66이라는 기록을 전광판에 새기는 순간이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한국 수영의 역사가 새롭게 쓰이는 소리였다.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린 지유찬의 얼굴에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손가락이 전광판을 가리켰다. 21초66. 일본의 시오우라 신리가 2019년에 세운 아시아 기록(21초67)을 0.01초 차이로 경신한 순간이었다. 더불어 자신이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운 한국 기록(21초72)마저 갈아치웠다.

이날 오후 싱가포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종목 남자 자유형 50m 준결승에서 지유찬은 21초77로 16명 중 공동 8위에 올랐다. 이스라엘의 메이론 아미르 체루티와 100분의 1초까지 동일한 기록. 결승 진출의 마지막 티켓을 두고 두 선수는 모든 경기가 끝난 후 스윔-오프라는 운명의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했다.

 

▲ 기록 확인한 지유찬. [로이터=연합뉴스]

 

수영장 주변은 이미 대부분의 관중이 빠져나간 적막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고요함 속에서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유찬은 체루티(21초74)를 0.08초 차이로 제치고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 선수가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50m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준결승에서 21초대 진입이 목표였는데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경기 후 지유찬은 매니지먼트사 올댓스포츠를 통해 전한 소감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흥분이 느껴졌다. "스윔오프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어 결승에 진출해 기쁩니다. 아시아신기록은 오래전부터 목표해왔던 거라 기쁩니다."

 

지유찬의 이번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해 도하 대회에서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자유형 50m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21초87로 전체 12위에 그쳐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 아쉬움을 1년간 간직해온 그가 싱가포르의 물살을 가르며 새 역사를 썼다.

 

이날 예선에서도 지유찬은 116명의 출전 선수 중 9위(21초80)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준결승과 스윔-오프를 거쳐 마침내 결승이라는 꿈의 무대에 서게 됐다.

 

▲ 결승 각오 밝히는 지유찬. [올댓스포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내일 열리는 결승에서 또 한 번 스스로를 넘어서고 싶습니다." 지유찬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7월 2일 오후 8시 9분,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출발대에 오른다. 50m의 짧은 거리, 그러나 한국 수영의 긴 역사를 바꿀 21초 남짓한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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