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6-02-14 08:00:24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이 4년간 3조2884억 원 규모의 설탕 가격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 408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검찰은 대표급 임원 2명을 구속 기소하며 이번 담합이 조직적 범죄임을 확인했지만, 과징금은 관련 매출의 12.4% 수준에 그쳐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공정위는 12일 전원회의를 열고 제당 3사가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설탕 판매가격의 인상·인하 시기와 폭을 합의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업체별로는 CJ제일제당 1506억8900만 원, 삼양사 1302억5100만 원, 대한제당 1273억7300만 원이 부과됐다.
◇ 대표급 주도한 조직적 범죄
이번 담합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더하는 부분은 "임직원의 일탈"이 아닌 대표급 임원이 직접 주도한 조직적 범죄라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CJ제일제당 전 한국식품총괄과 삼양사 대표이사를 구속 기소하며 "대표급 임원까지 담합에 가담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결과, 제당 3사는 대표급, 본부장급, 영업임원급, 영업팀장급 등 직급별로 촘촘한 연락망을 구축해 담합을 관리했다.
대표급은 큰 방향을 정하고, 영업팀장급은 거래처별로 점유율이 높은 회사가 협상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동서는 CJ제일제당, 오리온은 삼양사, 남양유업은 대한제당이 나서는 식이었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과징금 부과 직후 "깊이 사과한다"며 제당협회 탈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ESG 경영과 준법경영을 표방했던 이들 기업이 대표급까지 가담한 조직적 담합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부 통제 시스템은 사실상 '유령'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과징금 4083억, 담합 매출의 12.4%..."걸려도 남는 장사"
4년간 담합으로 벌어들인 3조2884억 원에 비해 과징금 4083억 원은 12.4% 수준에 그쳤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의 15%를 과징금으로 책정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법정 상한인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금액이 담합을 통해 부풀려진 가격으로 올린 매출일 뿐, 실제 부당이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 결과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설탕 가격 상승률은 59.7%로,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 14.2%, 식료품 물가 22.9%를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제당 3사는 담합을 통해 설탕 가격을 최고 66.7%까지 인상했다.
원당 가격이 상승할 때는 설탕 가격을 신속하게 올렸지만, 원당 가격이 하락할 때는 가격 인하를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인하 폭을 최소화했다.
2021년 1월 원당가 386원이 2023년 10월 801원으로 오르는 동안 설탕 가격은 720원에서 1200원으로 뛰었다. 반대로 원당가가 801원에서 578원으로 떨어진 지난해 4월에는 설탕 가격이 1200원에서 1120원으로 소폭 조정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담합으로 얻는 막대한 이익에 비해 처벌 수위가 턱없이 낮다 보니, 적발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가 담합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의 문제점을 꼬집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관련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나 같아도 (입찰 담합) 재범을 하겠다"며 제도의 맹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현행법상 재판 단계에서 담합으로 얻은 부당이득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환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지적에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담합을 '걸려도 남는 장사'가 아니라, '담합하면 회사도 내 인생도 망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담합을 주도한 관련자들의 개인 형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07년 이후 또 재범...조사 중에도 담합 유지
제당 3사의 담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2007년에도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설탕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총 51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에도 재발 방지와 윤리 경영을 선언했지만, 19년 만에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사안의 심각성을 더하는 부분은 공정위가 지난해 3월 현장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도 1년 이상 담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공정위 조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등 공권력을 기만하는 행태까지 보였다.
설탕 시장은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3사가 시장 점유율의 약 89%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과점 시장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고율 관세로 보호받는 시장이어서 신규 사업자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이러한 폐쇄적 시장 구조는 소수 사업자들이 경쟁 대신 담합을 선택할 유인을 강력하게 제공한다.
주병기 공정위 위원장은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 구조를 악용해 안정적 수익을 유지하면서 담합을 반복했다"며 "과징금 법정 상한을 관련 매출의 20%에서 30%로 높이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징금을 올린다고 해서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07년 제재 이후에도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고, 대표급 임원이 조직적으로 담합을 주도했으며, 공정위와 검찰의 처벌조차 재발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과문 한 장과 형식적인 재발 방지책으로 끝나는 관행이 되풀이된다면, 제당 3사의 담합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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