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현 기자
wtcloud83@alphabiz.co.kr | 2025-04-14 08:18:37
[알파경제=이준현 기자] 최근 식품업계의 잇따른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의 담합 감시 강화와 소비자단체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주요 식품기업들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을 이유로 들지만,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을 틈탄 의도적 인상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 식품업계 릴레이 가격 인상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약 40여 곳의 주요 식품·외식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일제히 올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월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6%로, 2023년 12월 이후 1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김치(15.3%), 커피(8.3%), 빵(6.3%), 햄 및 베이컨(6%) 등 주요 품목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외식 물가 역시 3.0% 상승하며 두 달 연속 3%대 상승률을 유지했다.
기업별로는 농심은 지난 3월 17일부터 신라면, 새우깡 등 17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했다.
오뚜기는 지난 1일부터 진라면 등 16개 라면 제품 출고가를 평균 7.5% 올렸으며, 팔도 역시 14일부터 비빔면, 왕뚜껑 등 라면과 비락식혜 등 음료 가격을 최대 8.3% 인상했다.
CJ제일제당은 3월부터 비비고 만두, 스팸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올렸고, 동원F&B도 같은 시기 냉동만두 15종 가격을 평균 5% 인상했다.
롯데웰푸드는 2월 17일부터 가나마일드 초콜릿 등 건과 및 빙과 26종 가격을 평균 9.5% 높였다.
가격을 직접 올리지 않고 제품의 용량이나 크기를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현상도 확인됐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지난해 4분기 동안 9개 식품에서 용량 감소를 통한 실질적인 가격 인상이 이뤄졌으며, 이 중 6개 제품은 용량 변경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
◇ "원자재·환율 상승" vs "실적 양호한데 이윤 극대화"
식품 기업들은 연이은 가격 인상의 주된 이유로 외부 환경 요인을 강조한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특히 코코아, 커피 원두, 팜유 등),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 원가 부담 증가, 인건비와 물류비 등 제반 경비 상승 등을 공통적으로 내세운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지난 1일 보도자료릍 오해 "최근 몇 년간 식품업계는 원재료·인건비·에너지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며 가격 인상을 자제해 왔다"며 "그럼에도 내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환율과 국제 원재료 가격이 지속 상승하면서 업계 전체에 가격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코코아, 원두 등 일부 원재료 가격 상승은 인정하면서도, 라면과 과자 등의 주원료인 밀가루, 식용유, 옥수수 등의 국제 가격은 전년도와 비슷하거나 일부는 오히려 하락했다고 지적한다.
소비자협의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소맥분 가격은 전년 대비 11.62%p 하락했으며, 대두, 설탕, 옥수수 가격도 하락세를 보였다.
더욱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주요 식품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양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비자협의회는 "남양유업(86.3%), 동서식품(6.2%), 동원F&B(10.0%), 대상(43.0%), 빙그레(17.0%), 오리온(10.4%), CJ제일제당(20.2%), SPC삼립(3.5%) 등 식품기업의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증가했다"며 이들 기업의 총매출원가 증감률이 총매출액 증감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아 원가 부담이 크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틈타 식품업계가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부의 리더십 부재를 틈타 제품 가격을 스리슬쩍 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 정부, 식품가격 담합 의혹 감시 강화.
이처럼 업계의 릴레이 가격 인상이 이어지자 정부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가격 인상이 담합이나 불공정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한 위원장은 "회의에서 최근 물가 상승으로 국민 생활이 어렵고 힘든데 (식품업계) 가격 인상이 담합 등으로 인한 것인지 공정위가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담합을 통한 식품·외식 등 민생 밀접 분야의 가격 인상을 엄단하겠다"며 "용량 축소를 통한 편법적인 가격 인상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담합은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고, 경쟁과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기본 작동 원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공정위의 담합 감시 예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최근 업계 전반의 가격 인상 원인은 인건비와 원재료 가격 상승 등이 원인일 뿐 담합과는 무관하다"며 "원자재와 인건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담합을 언급하며 감시를 예고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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