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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PG). (사진=연합뉴스) |
[알파경제=강명주 기자] 정부가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금융사가 피해 배상을 시행하는 ‘무과실 배상책임’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에 나섰다. 국민 개개인의
주의만으로는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금융기관도 예방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정책적 전환이다.
29일 금융권에서는 전일 국무조정실장 주재의 ‘범정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통해 발표된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대책’에 담긴 해당 내용에 대해 찬성과 우려의 목소리를 교차해 내놓고 있다.
이 대책의 핵심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피해자 개개인의 주의 만으로는 조직적인 범죄 조직에 대처가 쉽지 않다는 것이 충분히 학습된 만큼 외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기관과 사업자의 합종 연횡이 필요하다는데 방점을 두었다.
금융당국은 영국과 싱가포르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배상 요건과 한도, 절차 등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영국은 APP(Authorised Push Payment) 사기 피해 발생 시 송금은행과 수취은행이 피해액을 절반씩 분담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며, 최대 8만5000파운드(약 1억6000만원)까지 배상이 가능하다. 싱가포르는 통신사까지 책임 주체로 포함해 공동 배상하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 배상하는 금융사 VS 저조한 금융사...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세부 지침이 관건"
현재는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일부 은행들이 자율 배상을 시행 중이다. 법적 의무는 없고 배상율도 제각각이다. 배상 책임에 있어 귀책사유가 입증된 부분만을 배상하고 있고, 배상에 이용되는 각 금융사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과 현장 대응력에 편차가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2025년 기준으로 은행권의 자율 배상 실적은 총 피해액 약 9억8,122만원 중 1억6,891만원에 그쳐 배상율은 18% 정도로 나타났다. 피해자 183건 중 41건만이 배상 완료됐으며, 건당 평균 배상액은 약 412만원, 최고 배상액은 6,306만원이었다.
그러나 편차는 크다. A은행의 경우 수십만 건의 이상 거래를 탐지했지만 실제 조치율은 1%대에 그쳤다. 반면 B은행은 탐지 건수는 적지만 조치율이 10% 이상으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이미 자체적으로 배상을 진행하고 있는 금융사들은 이번 논의를 발단으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두나무는 17년도에서 23년까지 누적 153억을 배상했으며 특히 20년 한해에는 13억을 배상했다. 두나무 관계자는 "FDS로 피해를 예방한 금액은 17년부터 24년2월까지 누적 총 1200억에 달한다"고 밝혔다.
토스뱅크는 금융권 총 피해 배상액보다 큰 금액을 배상해 현 상황에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중고 플랫폼에서의 사기 등 5381건에 대하 20억 가량을 배상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최초 5천만원까지 보상하는 고객 안심 보장제를 운영하면서 수익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이용자가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21년부터 실시해왔다"고 설명했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조심스럽지만 해당 법제화가 합리적이고 정교한 기준에 따라 마련된다면 안타까운 사고들을 방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C은행 관계자는 "범죄 피해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가 현실화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서로 면밀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한다"며, "범죄 조직에 오히려 쉬운 먹잇감이 되는 길이 열리지 않고, 효과적인 범죄 근절 방안을 함께 수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D은행 관계자는 "현장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경우들을 다수 목격하는 만큼 범죄 예방이 가능해진다면 금융권도 적극 나설 것"이라면서도, "오히려 범죄조직의 타겟이 되는 악수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피싱 조직이 외화로 반출해버리는 부분에 발전한 AI 도입이 적극 검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통사, 대포폰 개통을 묵인할 경우, 위탁 계약 해지
일부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실적 압박과 금전적 유혹에 의해 신분증 위·변조나 대리 개통을 묵인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이통사에도 책임 있는 대책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 외국인 명의의 다중 회선 개통이나 단기 개통 후 해지 반복 등 이상 징후가 있는 개통 등 일련의 활동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만큼 안면인식 솔루션, 위탁계약 해지, 강력한 제재가 가능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등이 논의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해외에서 조직화 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인신매매 등 다른 범죄로도 번지고 있어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대응의 패러다임을 ‘개인 책임’에서 ‘제도적 책임’으로 전환하는 첫 단계에서 정부, 금융사, 통신사의 정교한 합종연횡이 범죄 조직을 한국에서 몰아내는데 얼마나 가시적인 효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알파경제 강명주 기자(press@alpha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