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효 선임기자
kei1000@alphabiz.co.kr | 2026-06-09 08:00:03
[알파경제=윤주호 엄브렐라리서치 대표이사]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서 씁쓸한 촌극이 벌어졌다. 발단은 송호성 기아 사장이 해외 기업설명회(NDR)에서 꺼낸 말 한마디였다.
송 사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IPO)은 대량 양산이 시작되는 2028년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당시 유일하게 참석했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의 보고서에 고스란히 실렸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거세게 항의하자, 증권사는 보고서를 황급히 수정하고 해당 발언을 흔적도 없이 지웠다.
논란이 커지자 현대차 측은 꼬리를 잘랐다. 담당 연구원이 회사 측 설명을 제멋대로 해석해 이른바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필자가 언론을 통해서도 거듭 꼬집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옹색한 변명이다.
깐깐한 해외 기관 투자자들이 모인 무거운 자리였다. 그곳에 홀로 들어간 연구원이 사장의 입에서 나오지도 않은 '2028년'이나 '대량 양산' 같은 구체적인 단어를 마음대로 지어낼 수는 없다. 이는 애널리스트에게 자기 밥줄을 끊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왜 현대차그룹은 그토록 다급하게 증권사 팔을 비틀어 '2028년'이라는 숫자를 덮으려 했을까.
그 짧은 한마디에 로봇 사업의 뼈아픈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헛된 환상과 외국계 자본의 냉혹한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 외국계 자본엔 '매도(Short) 신호'…개미만 우는 정보 비대칭
이런 상황에서 '2028년'이라는 시간표는 외국계 자본에 강력한 매도(Short) 신호로 작용했다.
필자가 파악한 여의도 정보망과 녹취록 등을 종합하면, BofA를 비롯한 메릴린치 등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은 이미 관련 신호를 읽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자본시장에서 상장 지연은 곧 '그때까지는 제대로 된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탄탄한 실적이 나와야 상장도 성공할 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눈치 빠른 외국계 큰손들은 실적 부진을 핑계 삼아 주가 하락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당장 주가가 떨어질까 두려웠던 현대차그룹은 부랴부랴 국내 연구원의 입부터 막았다.
그 결과 정보력이 뛰어난 외국계 자본은 매도 타이밍을 잴 때, 국내 투자자들은 알맹이가 쏙 빠진 반쪽짜리 보고서만 쥐고 있는 심각한 정보 비대칭이 생겨났을 뿐이다.
◇ '입틀막'에 무너진 리서치 독립성…현대차, 투명한 숫자로 증명해야
이번 사태는 대기업의 입김에 속절없이 무너진 우리나라 리서치 업계의 씁쓸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가가 떨어질까 봐 윽박질러 보고서를 뜯어고치는 일은 선진 자본시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기만행위로 통한다.
애널리스트의 입을 막으면 당장의 불은 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로 기업을 향한 시장의 굳건한 신뢰마저 잃게 된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미래를 이끌 훌륭한 자산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로봇'이라는 화려한 이름표가 빈약한 실적을 언제까지나 가려줄 수는 없다.
송 사장의 발언은 억지로 지워야 할 말실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장이 기업의 진짜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정직한 이정표였다.
현대차그룹에 지금 필요한 것은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남 탓을 하는 낡은 관행이 아니다. 다가올 2028년 까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자생력을 키우고 흑자를 낼 것인지 투명한 숫자로 시장을 설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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